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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사건 7개월, 마음의 짐 날린 장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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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싱가포르 대회 우승 이후 생각이 너무 많았다. 8개월 가까운 시간이 그렇게 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평범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앞으로 또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LPGA 푸본 타이완 챔피언십 우승
아버지가 놓친 가방에 전인지 다쳐
악화된 여론에 극심한 스트레스
한국서 병원 치료, 깊은 부진 빠져

9일 대만 타이베이 인근의 미라마르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푸본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장하나(24·비씨카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챔피언십에서 시즌 2승을 거둔 뒤 우승을 추가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장하나는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면서 합계 17언더파로 펑샨샨(27·중국)의 추격을 1타 차로 뿌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야자수 나무가 통째로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전날 10언더파를 몰아치면서 6타 차의 여유 있는 선두로 출발한 장하나는 6번 홀까지 3타를 더 줄였다. 2위 펑샨샨과는 8타 차까지 벌어졌다. 우승은 결정된 거나 다름없다는 예상이 나올 때 위기가 시작됐다. 파 3인 7번 홀에서 장하나는 티샷을 벙커에 빠뜨려 보기를 했다. 9번 홀에서 또 보기가 나왔다. 경쟁자인 펑샨샨은 11번 홀까지 4타를 줄이면서 3타 차까지 쫓아왔다.

장하나는 이날 여러 차례 그린을 놓쳐 위기를 맞았지만 그 때 마다 정교한 칩샷으로 파 세이브를 했다. 그래도 펑샨샨의 추격은 끈질겼다. 15번 홀에서 칩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어 2타 차까지 간격을 좁혔다. 강풍 속에서도 6타를 줄이는 뚝심을 발휘했다. 그러나 장하나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장하나의 2016년은 파란만장했다. 개막전인 지난 1월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선 LPGA투어 사상 처음으로 파 4홀에서 홀인원을 했다. 바로 다음 대회인 2월 코츠 챔피언십에서는 LPGA 입회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은 ‘장하나의 해’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승을 확정한 후 뒤 세리머니가 문제가 됐다. 클럽을 들고 춤을 추는 세리머니를 한 뒤 ‘사무라이 세리머니’라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3월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챔피언십을 앞두고 또다른 사고가 터졌다. 그의 아버지가 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놓친 가방이 앞에 있던 전인지(22·하이트진로)의 몸에 부딪힌 사건이었다. 전인지는 부상 여파로 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반면 장하나는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장하나는 우승 확정 직후 이번엔 비욘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일부 골프팬들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그를 질타했다. 전인지가 한 달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여론은 더 나빠졌다. 장하나는 LPGA투어와의 인터뷰에서 “하루 종일 방에서 울었다”고 말했다. 가방 사건 이후 그의 스트레스는 점점 커졌다. 결국 장하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 현기증과 빈혈 등이 심해 대회에 나설 형편이 아니었다.

장하나와 전인지는 시즌 초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장하나는 싱가포르 공항에서 일어난 가방 사건 이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장하나의 에이전시인 스포티즌의 김평기 부사장은 “하나의 마음 고생이 상상 초월이었다”고 전했다.

전인지는 지난 9월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활짝 웃었다. 남녀 통틀어 메이저 최저타 기록인 21언더파로 우승하면서 반전을 이뤄냈다. 장하나도 이날 대만에서 우승하면서 파란만장했던 2016년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장하나는 우승을 확정지은 뒤 다시 그린 위에서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 결국 두 선수는 2016년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장하나는 이날 우승으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5승), 리디아 고(뉴질랜드·4승)에 이어 LPGA투어 다승 부분 3위가 됐다. 펑샨샨은 합계 16언더파로 2위에 올랐고, 김효주(21·롯데)와 브룩 헨더슨(19·캐나다)이 10언더파 공동 3위다. 지난달 전인지-김인경(레인우드 클래식)에 이어 이날 장하나까지 우승하면서 한국 선수들은 최근 LPGA투어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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