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산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요즘의 일부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이상한 관념을 갖고 있다. 예술영화라면 으레 재미없다는 인식아래 멀리 하면서도 정작 오락성이 강한 작품에 대해서는 저급한 상업영화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이 경우 전제돼야할 것은 작품의 완성도다. 그런데 격에 맞지 않게 어설픈 예술성을 부여하려든 나머지 오히려 성격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리는 수가 많다.
이두용 감독의 『내시』 는 처음부터 재미를 노린 궁중 시대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남성이 제거된 내시의 한이라고 할까, 소외된 인간 욕망의 허상을 탄력 있게 표출시키려는 이감독 특유의 질긴 작가근성이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철저히 계산된 흥미 본위의 시네마투르기 (극작술)로 인해 가려지고 말았다.
예를 들면 성 기능이 회복된 이른바 「되살이」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초시내시(안성기)에게 의구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유도한 대목이라든지, 유산한 김상궁 (김진아)으로 착각케 만든 왕후(태현실)의 진맥 장면 등 기교의 앵글을 들 수 있다.
『내시』는 조선조 중엽 충청도 어느 마을 교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궁중에 간택된 참판의 딸(이미숙)을 찾아 내시가 된 한 젊은이(안성기)의 끈질긴 사랑을 배경에 깔고, 왕(길용우)의 신임을 얻은 내시감(남궁원)의 세속적 집념과 회의의 인생을 다채롭게 엮어 나간다.
이 영화는 특히 내시감의 반란등 동적 긴박감과 죽음의 엑스터시로 이른 왕의 침소등 정적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반전의 클라이맥스를 낳은 연출의 마무리 (편집)가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건 위주로 극을 전개시키다보니 필요 이상의 잔혹 장면이 눈에 띄었고, 인물들의 갈등이나 시대적 배경이 모호해져 버린 결함을 면치 못했다.
아울러 이감독의「상업적 현실」은 성취됐지만 「작가적 이상」은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영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