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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네덜란드 등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 진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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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18면

한국에서 ‘생활임금’ 실험이 벌어지는 사이, 해외에선 보다 파격적인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Basic Income) 논란’이다. 기본소득은 빈부의 차이나 직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현금을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단박에 끌어올린 곳은 스위스였다. 올 6월 스위스는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약 280만원), 어린이에게 625스위스프랑(약 70만원)을 매월 지급하는 내용을 국민투표에 붙였다. 결과는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됐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대신 상당수 복지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았다. 또한 삶의 질 향상보다는 정부 재정 부담과 근로의욕 저하, 이민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기본소득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개념이 아니다. 16세기 초 영국의 인본주의 철학자 토마스 모어가 이상적인 국가상을 그린 『유토피아』에서 정부가 최저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설파했다. 기본소득이 사회·시민운동으로 확대된 것은 1970~80년대 들어서다. 물론 아직 공식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했거나 진행 중이다. 핀란드는 내년부터 2년 동안 성인 1만 명에게 매달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급액은 약 550유로(약 69만원)다. 지난해 말 핀란드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69%가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했다. 네덜란드는 현재 20곳이 넘는 지방정부에서 월 980달러(약 112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인도 역시 2012년부터 2년간 6000명을 상대로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를 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기본소득에 대해 보수·진보 진영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승훈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진보 진영은 국가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 자유와 평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보수 진영은 복잡한 사회보장제도 관리 비용을 줄여 행정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에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무엇보다 재정 부담이 너무 크고 세금을 급격히 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한국이 1인당 월 11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23% 정도를 세금으로 더 걷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3년 독일 의회 역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거쳤지만 노동자의 근로의욕 감소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 불가피 ▶막대한 이민 초래 가능성 ▶지하경제 활성화 ▶급격한 세율 인상 등을 이유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기본소득 같은 ‘이상향’이 논의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이런 논의와 시도가 정치 포퓰리즘에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사회 발전과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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