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역사의 분기점 앞에서 길을 잃은 새누리당

중앙일보

입력 2016.10.06 21:09

업데이트 2017.02.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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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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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북핵, 도널드 트럼프, 연이은 자연재해가 우리 삶을 어지럽히는 혼돈의 시간, 지금 우리가 기댈 곳은 역사의 교훈뿐이다. 북한의 핵 보유가 9부 능선에 올라선 요즘, 필자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던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문헌들을 다시 들춰 보고 있다. 1962년 10월 소련이 핵탄두 99개를 미국 본토의 턱밑인 쿠바에 배치하면서 불거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 시대 양대 세력이 핵전쟁이냐, 타협이냐의 기로에 섰던 역사적 분기점의 전형이다. 긴박했던 13일간의 위기 속에서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이끈 국가안전보장회의 녹취록을 읽다 보면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서 리더가 보여 주는 용기, 결단, 그리고 이면에 도사린 혼란과 무질서의 파노라마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케네디 대통령은 핵 시대 전쟁과 평화 논리의 본질을 꿰뚫어 본 혜안, 핵무기의 재앙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용기와 결단을 통해 13일 만에 소련 핵탄두 미사일의 전면 철수를 이끌어 냈다).

100년 만의 산업 패러다임 변동
한반도 군사 균형의 불안정화
주변 강대국들 구조 변동 등이
동시에 덮쳐오는 역사적 분기점
정치인들의 용기·지혜·판단력과
무지·무감각 시험하는 시간이다

 50년 전 미국-소련 간의 핵전쟁 위기를 새삼스레 돌아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1)필자는 오늘날이 우리가 누려 온 평화와 안정이 지속될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2)평화와 안보, 산업 경제, 강대국 관계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동하는 역사적 시간 앞에 서 있지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大)분기점 앞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감각과 더불어 그날그날의 이슈에 따라 부유하는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 며칠간 이어진 당 대표의 단식 소동과 그 이전 몇 주간을 장식한 새누리당 일부의 핵무장론은 집권 여당이 멀리 19세기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현대판 고립주의 세력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당 대표의 단식은 국회의장의 ‘정치’를 정치로 상대하기보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제압하려 했기에 폭넓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국회와 정당의 본질은 여러 세력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지루한 과정이라고 알고 있는 시민들에게 당 대표의 ‘최후의 수단’은 생소한 것이었다. 단식은 비장한 승부수였지만 3당 체제의 협치를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비장한 승부수가 의회정치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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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지난 몇 주간 북핵 위기 심화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새누리당 일부의 핵무장론은 21세기형 고립주의와 다름없다. 우리가 자체 핵 무장의 길을 가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탈퇴하고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이 모두 참여하는 전면적 경제 제재를 감수하려 한다면 우리는 과연 며칠이나 견뎌 낼 수 있을까? 해외로 나가는 대부분의 수출길이 막히고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대부분을 들여올 수 없게 될 때 새누리당은 글로벌 경제, 글로벌 문화로부터 고립된 시민들에게 이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집권 새누리당이 안팎으로 고립의 길을 가려는 요즘, 바깥 세계에서는 경제 패러다임과 안보, 강대국 관계가 새로운 갈림길에 서는 역사적 대분기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봄 홀연히 서울에 나타나 이세돌 9단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알파고의 등장은 우리가 포스트산업화 시대로 성큼 빨려 들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인공지능은 단지 좀 더 똑똑한 자동차, 기계의 등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날로 똑똑해지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우리의 교육·언론·미디어·법률·의료뿐 아니라 정부와 정당의 역할은 혁명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 핵무기의 실질화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의 균형추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은 전면적으로 새롭게 재설정돼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안게 됐다. 한·미·일 삼각 협력 역시 북핵 억지라는 관점에서 리셋돼야만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국·러시아와의 협력에도 대담한 신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1997년 국가 부도 직전의 외환위기, 72년 석유 파동과 8·3 긴급경제조치, 71년 미국-중국의 비밀 교섭과 그에 따른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불안감 등 숱한 위기를 헤쳐 왔다. 그러나 100여년 만의 산업 패러다임의 변동, 수십년 만의 한반도 군사 균형의 불안정화, 주변 강대국 관계의 구조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들이 동시에 우리 삶을 덮쳐 온 적은 없었다. 역사적 분기점은 마치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정치인들의 용기·지혜·판단력과 아울러 무지·무감각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 세계화 개방 등을 주도하며 세계적 흐름에 나름대로 대응해 왔던 보수 정당은 지금의 결정적 분기점 앞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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