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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징병제와 모병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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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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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모병제를 제안하면서 병역에 관한 논의가 일었다. 그동안 대통령 후보들이 주로 정치에 관한 공약을 내걸었다는 사정과 북한의 위협이 부쩍 커졌다는 사정이 겹쳐 남 지사의 제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징집은 자유 사회 원리를 거슬러
적성 안 맞는 젊은이에겐 괴로움
사회의 복지를 크게 줄여
지원병 해병대 인기 높지 않은가
모병이 불의하다는 주장은
정의 기회 산술적 평등서 찾는 것

한 사회가 군대를 조직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구조와 성격을 결정하는 근본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잘 알려진 예는 ‘갑옷 입은 기사(armored knight)’의 출현이 중세 서양에 미친 영향이다. 중세 초기 이란에서 고안된 중갑기병(cataphract)은 유목민들의 경기병을 막아내는 데 뛰어나서 널리 퍼졌고, 마침내 유럽에서 갑옷 입은 기사로 변모했다. 말과 갑옷 같은 기사의 장비는 큰 비용이 들었으므로 기사 계층은 사회적 잉여를 장악하면서 지배계급으로 자라났다. 이런 사정은 중세 봉건제의 출현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 근세에 화기가 보급되자 기사 계급이 몰락했고, 봉건제도 따라서 무너졌다.

그래서 병역 체계를 개선하자는 제안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발전해 왔으므로 현행 병역 체계가 사회의 구성 원리와 현실에 맞는지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군인은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사회적 동물은 전쟁을 하게 마련이어서 무사 계층을 만들어낸다. 개미와 흰개미 같은 곤충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큰 동물 가운데 사람과 침팬지만이 전쟁을 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독자적 종으로 진화하기 전부터 개인들이 군인 노릇을 해 왔음을 가리킨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패를 지어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우리 마음이 다듬어진 환경을 보여준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분업이 뚜렷해지자 직업군인이 나타났다. 유사시에만 모두 무기를 들고 나섰다. 역사적으로 군대는 지원자로 이뤄지는 것이 상례였고 비상시에만 징집병이 더해졌다. 어느 군대에서나 장교와 부사관은 직업 군인이었고, 특수한 기술이나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병과들도 지원자로 채워졌다. 병력의 다수를 이루는 보병이 주로 전시에 징집병으로 이뤄졌다. 부족한 병력은 때로 외국인 지원병으로 메워졌는데, 이들은 용병이라 불렸다.

따라서 우리 병역 체계를 논의할 때 징병과 모병을 대립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색하다. 국군은 지원병이 근간을 이루고 실질적으로 육군 전투병과만 징집병으로 채워진다. 자연히 징병을 줄이고 모병을 늘리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어야 논의가 생산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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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은 자유 사회의 원리를 거스른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에 몇 해씩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겪는 괴로움과 손실은 사회의 복지를 크게 줄인다. 게다가 징집된 병사는 생산성이 낮고 군사 기술을 익힐 시간도 적다.

반면에 지원병은 의욕도 크고 현대 군대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다. 시장의 원리를 통해 충원하므로 인적 자원의 배치에서 단연 효율적이다. 훈련과 위험한 임무로 이름난 해병대가 어느 사회에서나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시장을 통한 충원의 장점을 보여준다.

모병제를 당장 적용할 부대는 예비군이다. 지원병으로 이뤄진 예비군 사단 몇 개를 만들어 한 해에 두어 달 실전적 훈련을 하고 보상과 진급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문제 많고 미덥지 않은 현행 예비군 체제보다 몸집은 작지만 전력은 훨씬 뛰어날 것이다.

반론도 나왔다. 모병은 군대를 가난한 계층으로 채울 터여서 정의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가난한 계층의 젊은이가 많이 지원하리라는 전망은 나올 만하지만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지적은 비논리적이다. 젊은이들에게 자유롭게 직업을 고를 기회를 준 것이 어떻게 불의를 낳는가? 원하지 않는 직업에 일정 기간 종사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국가라 하더라도 징병이 오히려 정의에서 멀지 않은가?

그런 논리로는 건설 현장에 가난한 계층이 많은 것도 불의고, 의사와 같은 좋은 직업들에 가난한 계층이 적은 것도 불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이 점점 세습직이 돼 가는 지금, 국회의원들도 징집을 통해 소득 기준으로 훨씬 평등한 국회를 추구해야 옳지 않을까? 국민참여재판에 징집된 배심원들의 판단을 보면 징집 국회가 지금 국회보다 못할 것 같지도 않다.

모병이 불의하다는 주장은 정의를 기회의 평등과 절차의 공정성이 아니라 최종 결과의 산술적 평등에서 찾는다.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그런 평등의 함의는 무섭다. 그것을 실현하려면 개인이 직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중앙 기구가 노동을 강제로 배분해야 한다. 그런 ‘노동의 지도’를 하이에크는 개인이 자유를 잃고 중앙 기구에 ‘예속되는 길(The Road to Serfdom)’이라고 경고했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