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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아태영화제 시사회를 보고 김종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제3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출품작 공개시사회(12∼16일·국도극장)에 선보인 8개국작품 13편을 보고 느낀 것은 참가국들의 촬영·편집 등 기술수준이 예상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이미 영화 양산국 인도와 오락성이 강한 홍콩영화에 의해 일본영화가 위협받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향상은 특히 주목할만했다.
이번 소개된 영화들은 예술성보다 상업성에 치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탓인지 시한부의 삶(백혈병)을 내세운 『네자매』(일본) 『엄마안녕』 (홍콩)을 비롯하여 『그 여자의 일생』 (대만) 『상처난 진주』(인도네시아) 『회색의 황혼』(일본) 등 병으로 죽도록 설정된 소재를 택한 경우가 많았다.
이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인도영화 『무용에의 집념』 과 일본영화 『회색의 황혼』, 인도네시아영화 『추억의 유품』 등 세편이었다.
의족을 한 불구의 몸으로 공연의 꿈을 관철시킨 한 여자무용수의 끈질긴 집념과 승리를 그린 『무용에의 집념』(「신기탈·스리니·바사라오」감독)은 중후한 카메라 워크와 오픈세트에 따른 조명등 색상이 뛰어났다. 특히 관중석의 시각에서 선망의 무대를 실현시킨 환각의 시퀀스와 모친의 책망을 듣고 우물물을 뒤집어쓰는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 -물묻은 빨간 꽃사진」 의 몽타지가 좋았다.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한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한 실직노인 (남우주연상의-치아키·미노루일)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좌절을 부각한 「이토·스냐」감독의 『회색의 황혼』은 강한 주제의식으로 출품작중 가장 메시지가 강했으며, 독립투쟁에 참여한 한 레지스탕스청년의 의로운 죽음을 그린 「테구·카리아」 감독의 『추억의 유품』은 단단한 구성과 편집, 원색을 억제한 중간색조의 촬영 등으로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개시사회 전날 오후에야 서둘러 초대장을 낸 주최측의 졸속한 계획과 영화인들의 무관심으로 모처럼 마련된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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