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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담긴 '말할 수 없는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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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선율을 통해 음악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사진 픽사베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창조적인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놓아가는 음들을 단순히 주워 모아 듣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들었던 음악과 비교하기도 하고,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의 음악적 경험과 ‘기대감’이라는 미래 예측 기제를 통해 음악을 감상한다.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움직인다. 기쁨, 슬픔, 안타까움 등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풍부한 감성을 음악으로는 전한다.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주의 깊게 듣는 음악적 요소는 ‘선율’이다.


작곡가들은 선율을 다루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고, 베토벤은 구도자 정신을 담아낸다. 모차르트가 ‘비화성음’을 쓰는 방식만 봐도 그렇다. 그는 비화성음을 독창적으로 사용하면서 아름다운 선율선을 만든다. 비화성음은 불협화음이다. 충만한 느낌의 협화음을 방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요소는 음악적 긴장감을 더한다. 오히려 선율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한수산이 예찬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비화성음으로 빚어낸 것이다. 첫 주제부분만 봐도 그렇다. 첫마디에 나오는 보조음(D)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더한다. 셋째마디부터 지속해서 나오는 당김음들은 곡을 좀 더 리드미컬하게 만든다. 넷째마디에 예비없이 나오는 계류음처럼 들리는 전타음(App)은 음악적 묘미를 고조시킨다. 열 번째 마디에 나오는 꾸밈음(F#G#)들은 로코코 스타일의 풍미를 더한다. 중간중간 끊임없이 나오는 경과음들은 선율라인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모차르트는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음악적 순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화성음을 사용한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밖에 었다. 피아노 소나타 K.331에 쓰인 계류음(Sus), 전타음(App), 나폴리6(N6)만 봐도 그렇다.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베토벤은 한 가지 선율 모티프를 가지고 끈질기게 발전시킨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은 서주부분 음형 'C-E♭-D'를 가지고 음악을 전개시킨다. ‘단3도-단2도’의 우울감이 느껴지는 선율 진행은 곡 전체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이 간단한 음형으로 310마디의 첫 악장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한 음악학자는 <비창>소나타를 두고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 올라 점점 커져 나가는 곡”이라고 비유했다.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듯 작곡스타일도 마찬가지이다. 모차르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받아적는 ‘일필휘지’ 스타일이라면 베토벤은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한 음표씩 그려나간다. 베토벤은 노트 하나를 두고 9번 고치기도 하는 작곡가이다.


그럼에도 두 작곡가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음악적 비밀이 있다. 간격-충족(Gap-filling) 방식에 의해 음악적 기대감을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선율이 도약하면서 생기는 ‘간격’을 순차진행하는 음정을 통해 채우는 패턴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C→G로 완전 5도 도약한 후 F-E-D-C로 선율선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클래식 작품들은 기대-충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거기에는 ‘음악적 일탈’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율이 흘러감으로써 음악 청취자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작곡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놀라움을 주고, 그 긴장감을 완화시킨다. ‘음악을 듣는 것’보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 조금 더 창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김유빈 기자  kim.yoov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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