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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미 정권 교체기의 북핵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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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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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김정은의 핵·미사일 정책은 격하고 급하다. 1년에 2번 핵실험을 하고 무수히 미사일을 실험하는 행태는 선대에 비춰 봐도 악성이다. 그런데 극악한 행태에도 역설적인 유용성은 있다. 북한이 수많은 도발로 일정한 방향성을 드러낸 결과 이제 우리는 그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북한은 분명히 핵무기 소형화·경량화와 운반수단의 고도화를 과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재를 비웃고 후견인인 중국의 만류나 평화협정 병행 논의 제안도 무시하며 거칠게 가고 있다.

북핵은 정권 생존용 카드
압박·협상 한 가지 대응으론
문제 대응과 해결 어려워
대선 과정 국론 수렴 절실

또 북한은 서두르고 있다. 몇 주가 멀다 하고 미사일 실험을, 몇 달이 멀다 하고 핵실험을 한다. 5차 핵실험 직후 대형 엔진 실험 성공을 선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실험으로 안보리가 소집되는 가운데 미사일로 도발하는 것은 4차 핵실험 후 상황과 판박이인데 조급성과 함께 추가 발사를 암시한다.

격하고 급한 행보의 겨냥점은 어디일까? 물론 궁극적으로 핵 보유를 지향하겠으나 우선은 미국을 타격할 역량을 입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에 맞춰 충격 효과를 키우고자 서두르고 있다. 과거 북한은 미국에 정부가 들어서면 도발을 해 왔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 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2차 핵실험, 2013년 오바마 재선 후 3차 핵실험을 했다. 예외라면 2001년 조지 부시 취임 때인데 부시의 카우보이식 대응을 의식했을 수 있다.

그러면 대미 위협으로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여기에서 북한이 일단 새로운 대미 담판을 꿈꾸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담판이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수순과 시점, 위협적 레토릭을 해석하기 어렵다. 위협을 고조시키면 미국의 새 정부는 누구라도 압박이든 협상이든 오바마보다 강하게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벼랑 끝에서 고강도 협상을 벌여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계산일 터다. 사실상의 핵 능력 인정, 평화체제, 군사 안보 문제를 담판하려는 것이다.

벌써 워싱턴에선 군사 옵션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우선 미사일 발사대나 비행 중인 미사일을 타격하는 방안, 무력을 수반한 선박 단속 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으로서는 강수(?手) 이전에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긴장된 협상일 것이며 실패하면 강수의 명분이 된다. 한편 우리 쪽을 보면 이때가 현 정부의 마지막 해이자 대선기간이다. 북핵 상황이 대선을 흔들 소지가 있다. 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도 미국과 강압 또는 협상 모두에 대해 고난도 조율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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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면 현재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몇 갈래 입장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가변적 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운 입장을 갖고 있다. 제재 압박 위주로는 미국이 협상하려 할 때 적응이 어렵고, 미국이 강수를 쓰려 하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우리 여론은 군사 옵션에 반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 엇박자를 내거나 아니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처럼 급변침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핵무장, 전술핵 도입 등 강성 주장이 부상하고 있다. 이 주장은 실현가능성도 유용성도 없다. 정치권의 또 다른 입장은 대화 일변도의 주장이다. 상황이 북한발(發) 도발과 이에 따른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므로 이 또한 걸맞지 않을 것이다. 유사한 일을 사드 사례에서 본 바 있다.

만일 한국 대선에서 핵이 이슈가 되고 논의가 객관적 정세와 무관하게 한국식 싸움 논리에 따라 강온 양극단으로 가게 되면, 승리한 쪽은 하나의 접근방안을 위임받았다고 여길 수 있다. 이러한 결말은 우리의 대응력을 제약하므로 우려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내부에는 매사를 원론과 극단으로 몰아가는 관성이 있다. 대선 열기는 이 관성을 부추길 소지가 크다.

압박과 협상은 모두 필수도구다. 상황에 따라 쓰는 비율이 다를 뿐이다. 도발하면 압박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협상을 통해 응수를 타진하고 다음 수순을 선택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념 대립의 결과로 압박과 대화라는 용어가 다 오염됐다. 보수는 대화를 포상으로 여기고 진보는 압박을 대화 저해요소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중국 유격전 교범에 나오는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에 시사점이 있다.

이제 북한의 의도를 감안해 우리의 대응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핵에 대해서는 정파와 이념을 내려놓고 국익 위주로 초당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대선은 이를 향한 국민적 의견 수렴의 정치 과정이 돼야 한다. 대선이 북핵 대처를 양극화하는 굿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상황은 강수와 협상 모두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1년여는 북핵 향배를 겨루는 중요한 시기다. 북한은 이 게임을 향해 격하고 급하게 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대선이라는 열기와 불확실성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고, 이 속에서 각자 냉철한 선택과 상호 정교한 공조를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