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리기술 100년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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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0년 전 작품에 미쳐 전기불도 없는 깊은 시골에 묵고 있었다. 어느 날 너무 늦게까지 일을 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산 속, 달도 떠오르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에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개구리와 함께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어느새 내 친구가 되어 주었고 나는 그 산속에서 어둠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개구리와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이번 「프랑스 유리예술 100년 전」 을 관람하면서 내 눈길을 끈 많은 작품 가운데 「아! 이곳에도 개구리가…」하며 탄성을 자아내게 한 작품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작품들도 제각기 신비롭고 황홀한 빛과 자태, 고고한 아름다움, 차갑고 냉정한 유리의 뛰어남 등이 경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조옐·리나르」의 유리작품 『축구하는 개구리』 는 또 하나의 충격을 주었다. 붉은 빛과 노란 빛깔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있고, 지금 살아 있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개구리를 보았다.
정지된 형태야 쉽게 표현해 낼 수 있겠지만 제목이 그렇듯이 『축구하는 개구리』를 표현하자면 얼마나 순간적이며 세련된 기교가 필요했겠는가. 1천5백도가 넘는 뜨거운 열에 녹인 유리를 개구리의 몸통이 될만한 분량만큼 덜어내서 대롱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면 몸통이 완성된다.
짧은 시간에, 열이 식기 전에 형태를 만들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손수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어려운 작업환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더우기 색깔과 형체만으로 살아있는 듯한 율동감을 주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교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유리공예다. 이 작품도 유리+색 에나멜을 가미해서 만든 순간작품이다. 몸통이 우선이고, 네다리·머리, 그리고 축구공을 만들어 덧붙임으로써 이 작품도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유리예술품도 감상하고 때로는 수집을 했지만 이번 호암 갤러리에서의 유리 명품전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유리예술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순수하게, 깨끗하게 정화시키며 영혼마저 맑게 세탁해주는 예술의 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전시회가 오픈된 후 두번씩이나 작품을 감상한 것도 바로 이러한 순수를 찾아서 헤매는 나의 작은 열병의 표현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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