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앞둔 손길승 SK회장 근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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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항소심 1차 공판을 앞두고 전경련 손길승 회장은 좀처럼 잠을 못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이 여전한데다 항소심 결과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LG.롯데 등 주요 회원사가 탈퇴 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치는 등 전경련 위상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孫회장은 요즘 서울 서초동 자택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한다. 생각할 것이 많아서다. 이런 날은 회사 소유의 워커힐 빌라에서 지낸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孫회장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얼마 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비디오로 봤다"고 전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孫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계속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라면서 "종종 혼자 소주를 마시고 비디오를 보면서 잠을 청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 그룹 관계자는 "정부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수장으로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孫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孫회장이 물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보석신청을 한 최태원 SK㈜ 회장이 석방되면 사임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죄가 아니다" "지금 그만두는 것은 전경련이나 SK 양측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LG와 롯데 등 주요 회원사의 움직임도 孫회장의 고민거리다. 孫회장은 LG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최근 구본무 회장을 방문했지만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방문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具회장은 "전경련 일이라면 만날 생각이 없다"며 몇차례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具회장은 지난달 하순 "전경련 탈퇴를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로통신의 증자 과정에서 LG와 SK가 대립하는 등 그룹 간 관계도 좋지 않다. LG 관계자는 "지난 2월 전경련이 현명관 부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우리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신동빈 부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멤버인 롯데그룹도 최근 전경련이 주관하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서울총회 장소 문제로 크게 반발했다.

이 행사는 당초 5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문에 8월로 연기되는 과정에서 호텔신라로 장소가 바뀌었다. 롯데 측은 호텔신라 사장 출신인 玄부회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탈퇴 의사를 비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적극 해명에 나서 겨우 무마됐지만 앙금은 남아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래 저래 孫회장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당분간 더 계속될 것 같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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