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극우 대변한 소영웅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후지오」그는 누구인가>
76년 전 한일합방이 발표됐던 국치일(8월29일)이 1주일도 채 못지나서 당시 침략국이었던 일본의 문부상이 잇달아 한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민족적 굴욕감을 안겨주었다.
황당무계한 사관을 내놓아 한국의 여론을 들끓게 했던 「후지오」는 망언을 거듭하면서도 『내목을 자를 테면 잘라라』고 큰소리를 쳤다.
「후지오」의 망언이 나오자 한국·중공은 즉각 그의 발언을 통렬히 규탄하는 한편 일본정부에 대해 「후지오」를 해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일본언론들은 연 이틀간 이 파문을 1면 톱기사로 다루었으며 사설·논조 등은 한결같이 「후지오」발언이 터무니없이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일색이다.
「망언의 거물각료」가 일단 물러나더라도 그가 자민당의 중진의원으로, 혹은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후쿠다」(복전규부) 전수상의 신뢰를 받는 정치인으로 남아있는 한 한일간 외교에는 여전히 불씨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
「후지오」는 곳곳에 퍼져 있는 잠복성 황국사관을 현재화하는 선도역을 맡고 있으며 이것을 그가 해야할 「사명」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지난 7월 중의원·참의원 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을 압승시킨 국민들의 지원에 도취한 나머지 그의 잠복성 황국사관도 각종모임에서 공공연히 펼쳐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가 말하는 국민의 소리는 극우파 정치가나 사학자들의 왜곡된 사관을 이제 더 이상 쉬쉬할 필요 없이 떳떳한 「사실」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후지오」를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는 단체는 선거 후 자민당 소장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가기본문제동지회다. 「후쿠다」파 (현재는 「아베」당총무회장파)소속 멤버가 이끌고 있는 이 단체는 「후지오」의 최근의 「용기 있는 발언」에 응원을 보내고 있으며 그의 발언이 각계 우익인사들의 의사를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만하다. 자민당내 각 파벌의 젊은 의원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나 각료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참배에 대한 외국(한국·중공 등)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라고 요구해 왔다.
전후일본이 「정신적 황폐」에서 일어서도록 애국심고양을 내세우며 새 국가상 구축을 겨냥하는 「나카소네」수상의 신국가주의를 「후지오」는 잘도 대변했다. 단지 「후지오」가 정치인으로서 센스를 결여한 채 아무데서나 말을 뱉음으로써 말썽을 피우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생각들일 뿐이다. 내면적으로는 상당수가 한통속이다.
「후지오」가 내각에서 쫓겨날 것을 각오하면서 망언을 거듭하는 속셈은 어디에 있을까. 그가 소속해 있는 「아베」파가 「나카소네」수상을 견제하기 위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보다도 다수의 지원세력을 대표해서 그 동안 자중해왔던 극우사상을 표출시키는 우직한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후지오」자신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싶어한다고 다수의 관측통들이 분석하고 있다. <동경=최철주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