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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의심자에 마약류 장기처방하는 동네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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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울증과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A(54ㆍ여)씨는 2013년부터 서울지역의 종합병원과 내과·이비인후과 등 12곳의 병원을 옮겨다니며 3년 간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인 졸피뎀을 263회 처방받았다. 하루권장량을 기준으로 하면 3년 간 11년치 약을 받은 셈이다.

#2.전남에 위치한 B가정의학과는 불안ㆍ불면증 완화에 효과가 있는 디아제팜을 쉽게 처방해준다. 전국에서 디아제팜 처방을 받은 상위 수진자 100명 중의 9명이 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이 9명의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로 노인들이다. 이들은 2~3년 간 매달 각 10~20회, 많을 때는 27회까지 이 약을 처방받았다.

동네의원이 정신질환 의심자들에게 마약류를 장기 처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새누리당 성일종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최근 3년간 6대 마약류의 총 처방 건수 3678만건 가운데 동네의원에서 처방된 건수는 전체의 64%에 해당하는 2357만건이었다. 6대 마약류는 일명 ‘우유주사’로 알려진 프로포폴을 비롯해 졸피뎀ㆍ디아제팜ㆍ알프라졸람ㆍ에티졸람ㆍ미다졸람 등이다. 동네의원 처방 비율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3년 61%, 2014년 64%, 2015년 67%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각 약품을 처방받은 상위 수진자 100명을 조사한 결과 마취ㆍ시술 전에 사용되는 미다졸람과 프로포폴 주사를 제외하고는 90% 이상이 동네의원에서 처방받은 환자였다. 디아제팜의 의원급 처방비율은 2013년부터 77→80→82%로, 졸피뎀은 65→66→68%로 증가 추세다.

동네의원에서 일시적인 수면장애나 불안증세 등을 낫게 하기 위해 마약류를 소량 처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 처방은 마약류에 중독되게 하고, 임시방편만 지속해 정신질환 의심 환자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경기도의 한 내과 전문의는 “할머니들에게 이러한 약을 처방하면 불면증 등이 금방 나았다며 명의대접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정원 고양정신병원 이사장(정신과 전문의)은 “가정의학과 등에서 환자에게 수년간 계속 신경성 증상 치료를 위해 마약류를 처방하다보면 점점 투약기간과 용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정신질환 의심 환자들의 기저 질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동네의원에선 소량으로 일시적 처방한 후에 정신과로 보내 치료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일종 의원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독성과 의존성이 강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엄격히 관리돼야 함에도 동네 내과나 의원, 가정의학과와 같은 의원급 병원에서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상황을 방치하면 잠이 오지 않거나 가벼운 우울증만으로도 누구나 처방받기 쉬운 약으로 인식될 우려가 크다”며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와 제재 등을 통해 과다처방에 대해 보다 높은 수준의 관리ㆍ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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