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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스팽글」직물개발 세실실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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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4년4월10일 하오-. 김포공항 입국장에는 세실실업(주)직원 1백여명이 나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발 KAL기가 도착, 장현익 사장(42)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직원들이 와르르 그를 둘러쌌다. 자체 개발한 고급특수직물인 「스팽글직물」이 열어준 「새 출발」을 자축하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20일전 견본 품을 들고 단신 중동으로 날아갔던 장 사장이 1백70만 달러 어치의 수출주문을 받아 돌아오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말로 예정된 선적기일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시험 생산한 샘플만 믿고 본격생산에 들어갔던 것이 실수였다.
결국 불량원인이 기계진동·소음으로 기계에 연결된 컴퓨터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임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빗발치는 해외로부터의 클레임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 종업원 2백50명>
세실 실업은 스팽글직물을 생산, 전량 수출하는 중소업체. 전 종업원 이래야 2백50여명이고 자본금은 4억8천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해 수출실적이 스팽글직물 한 품목만으로 6백50만 달러나 됐다
올 8월말 현재 5백50만 달러를 1천만달러 수출을 내다보고 있다.
스팽글직물은 직물원단에 스팽글 (Spangle: 빛을 반사하는7·2 ㎜의 원형 폴리에스터필름장식)을 부착한 특수직물. 빛을 받으면 휘황찬란한 반사광을 내어 무대복·야외복·혼례복 등으로 쓰인다. 현재 수출단가가 야드당 10달러로 실크의 2배 수준인 최고급 직물이다.
세실이 사운을 걸고 스팽글 자수기 개발에 나선 것은 83년3월이었다. 베테랑 직원 10명으로 개발팀을 구성하고 장 사장이 직접팀장을 맡았다.
81년부터 생산, 수출하던 크리스틀 직물(원단에 1·6㎜의 수정조각을 부착, 무대복 등으로 쓰이는 고급직물) 의 수출 단가가 야드당 12달러에서 3달러이하로 곤두박질 친데 대한 대타작전이었다.
세실이 국내 최초로 손을 댄 크리스틀 직물 업에는 이미 높은 부가가치를 노리고 40여 업체가 난립, 극심한 수출경쟁을 빚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팽글직물생산업체가 6∼7개 있었으나 미싱이나 원시적인 수 작업에 의존, 질·양면에서 보잘것없을 때였다.
이를 기계화한다면 엄청난 생산성향상과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데 착안했다.
기존 자수기에 스팽글공급장치를 덧붙이고 컴퓨터를 연결해 스팽글 봉착작업을 자동화하려는 것이었다.

<자수기 개발비 7억>
제작했던 기계를 다시 뜯어버린 것만도 세번이나 됐다. 순 개발비로만 7억2천여만원을 쏟아 부은 뒤인 84년10월, 스위스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스팽글자수기를 완성, 완벽한 제품을 생산해내게 됐다.
서울 성수동 1백40여 평의 생산공장에는 대형 에어컨 2대가 적정 온·습도를 유지시켜 주는 가운데 스팽글자수기 5대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3개월 분만 수주>
가로 17m, 세로 1·5m, 높이 4m로 기관차를 연상시키는 기계에는 상하 2단으로 1천36개의 바늘이 늘어서 있다. 이 바늘들이 종이 롤에 천공된 디자인프로그램에 따라 정연하게 스팽글을 박는다. 기계 1대가 1천36대의 미싱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당 하루 생산량은 4백 야드. 5대가 가동 중이므로 하루 2천 야드까지 생산할 수 있다.
손 작업에 비하면 생산성은 무려 12만배. 깔끔하고 다양한 제품을 얻을 수 있는 데다 노동력도 훨씬 적게 들어 기존제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생산량을 전량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 구미지역과 중동 등에 직접 수출하고 있는데 현재 해외 마키팅 요원은 장 사장을 포함해 3명뿐인데도 걱정할게 없다.
제품이 좋아 선전에 신경을 안 써도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미 뉴욕에서 열린 패브릭 쇼에 자사제품을 출품, 호평을 받은 이래 주문이 밀리고 있어 3개월 분만 수주하고 있단다.
지난 7월에도 20일 동안 구미각지를 돌았다는 장 사장은 제품만 좋다면 수출 길은 저절로 열린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래선 관리는 철저히 하고 있다.
지난 연초에는 장 사장이 직접해외거래선을 찾아다니며 간단한 선물로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을 정도다.
장 사장은 거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특수 직물업계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은 무역장벽이나 해외 경쟁업체 때문이 아니라 국내업체들끼리의 과다 경쟁 때문이라며 남의 아이디어, 남의 기술로 돈을 벌려는 얌체기업들을 꼬집는다.
『중소기업이 살길은 남이 손대지 않는 분야를 개척,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길 뿐 입니다. 자본·기술·정보 어느 것 하나 나은 것이 없는 중소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돈도 벌고 수출로 국민경제에 기여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개발 뿐 입니다.

<국내과당경쟁 문제>
장 사장은 현재 국내 6개 업체가 스팽글직물 생산에 뛰어들어 수출단가가 1년전에 비해 절반이하로 떨어진 현실을 감안, 이미 다른 특수직물개발에 손을 대고 있다고 귀뜀한다.
특수직물업계에 뛰어든지 15년만에 스팽글직물로 수출전선에서 톡톡히 한몫을 하게된 세실 실업은 마키팅보다는 연구개발(R&D)로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섬유업계의 활로를 뚫고 있는 것이다. <곽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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