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따뜻함 주는 '시계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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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사무실 한켠의 '차곡차곡 뚝딱방(수선 작업실)'에서는 보관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중고시계 47개가 자원활동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목발을 짚은 강용배(50.사진.서울 강동구 암사4동)씨가 작업실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가게의 '시계 의사'로 통하는 姜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다.

암사동에서 부인과 함께 6평 남짓한 금은방을 하는 姜씨는 지난 4월 아름다운 가게에서 가전제품.옷.시계 등의 수리를 도와줄 봉사자를 찾는다는 본지 기사를 보고 "시계 수리라면 자신이 있다"며 자원활동을 신청했다.

시계 수리 경력 30년인 姜씨는 손목에 찬 시계만 보고도 그 사람의 직업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베테랑. 1992년에는 장애인 전국 기능대회 시계수리 부문에 출전해 금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한달간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하고 일과 후 밤 11시까지 금은방을 지키고 앉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된 중고시계 70여개를 하루 5~6개씩 모두 수리했다.

姜씨의 손길을 거친 시계들은 7월 초 아름다운 가게 3개 분점에 나누어 진열된 후 2~3일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시계마다 3천원 가량 들어가는 부품비와 배터리 값은 모두 姜씨가 부담했다.

아름다운 가게 이외에도 姜씨는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암사동 인근 경로당과 중증장애인 보호소를 찾아 식사를 대접하는 자원봉사를 수년째 해오고 있다.

그는 "학창시절 목발에 의지해 버스에 오르면 누군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 짐을 들고 거리를 걷노라면 다가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며 "내가 받은 도움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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