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미술관의 두 가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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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미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 현대미술관이 완공, 25일 개관했다.
청계산 기슭 남서울 대공원 안에 세워진 분홍빛깔의 웅장한 건물은 주위의 뛰어난 경관과 함께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발족한 것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되었으나 경복궁, 또는 덕수궁시대의 건물은 모두 제한된 전시공간과 구조면에서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었다.
이번 과천에 1백88억 원을 들여세워진 국립 현대미술관은 부지면적 2만평에 연건평 1만2백72평의 지하 1층, 지상3층 건물로 전시면적만도 약 4천4백 평에 이르고 있어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세계의 어느 미술관에 견주어 크게 손색이 없다.
그러나 아름답고 거창한 새 현대미술관은 그 외양의 무게만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진입로의 문제다. 서울대공원안의 문화시설 지역에 자리잡은 미술관은 별도의 전용도로를 갖추고 있지 않아 관람객은 기존의 공원진입로를 사용,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무려1·5㎞에 달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이면 미술관에 닿기도 전에 모두 지쳐 버릴 것이다.
공원 안에는 무궤도 차가 운행되고 있으나 그것을 이용하자면 1인당왕복 8백원이란 별도의 경비가 든다. 가뜩이나 도심 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미술관에 닿는 길마저 큰 불편을 주고 있다면 그곳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크게 줄어 들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나 뉴욕의 근대미술관등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은 예외 없이 모두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의 문화공간은 대중의 교통편의를 무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열려진 미술관」 이란 개념은 그런 뜻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처럼 거액의 예산을 들여 마련한 미술관이 그야말로「무지개」가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속히 전용도로를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전용버스라도 갖추어 미술관을 찾는 시민의 발길을 가볍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장래엔 사당동의 지하철이 그 폭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미술관의 생명인 수장작품의 절대 부족이다. 현대미술관이 지니고 있는 작품은 목록 상으로는 l천9백 여 점에 달하나 실제 전시할 만한 작품은 그 절반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번 개관기념 전에 국내 작품보다 외국작품전시에 더 비중을 둔 듯한 인상도그 벽면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이 같은 큰 기획전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따라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은 현대미술관의 작품구입 예산이 너무나 적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문화공간의 확충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그런 하드웨어에는 거기에 걸 맞는 내용의 소프트웨어가 담겨야 더 빛이 나는 법이다.
작품수장에는 예산을 들이지 않고 곁만 번지르르한 것은 국가적으로도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못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모든 국민에게 친숙감을 주는「열려진 미술관」의 구실을 하려면 우선 이 두 가지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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