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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연내에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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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부의 조속한 개혁을 요구했다. 국감 며칠 전에는 성상철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표를 의식해서 부과체계 개혁을 미룬다”는 투로 정부·여당을 비판했다가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마바가 칭찬

건보는 베트남·라오스 등 개도국에 수출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칭찬했을 정도다. 1977년 도입 후 약 40년 만에 이런 저런 갈등을 거듭하면서 진화해 온 게 요즘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불평등의 대명사’가 돼 원성을 사고 있다. 선진국·개도국 할 것 없이 외국에서 부러워하는 점은 ▶전국민 가입 ▶비용 대비 효과 ▶우수한 접근성이다. 1977년 도입 후 10여년 만인 1989년 전국민 건보를 달성했다. 한국에 태어나면 누구나 건보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가 소득의 6.12%(직장가입자 기준)에 불과하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건보증 없이 전국 어느 병원이나 쉽게 갈 수 있다. 큰 병원이야 예약을 해야 하지만 동네의원은 쉽게 간다. 심지어 감기 환자가 길 가다가 악화되면 눈 앞에 보이는 의원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전문의를 만나고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불평등 부과체계

불평등은 보험료 부과 방식에서 나온다. 단기 압축 성장하다 보니 등한시한 부분이다. 보험료를 부과하기 위한 소득 파악이 어려우니 직장인과 지역가입자로 제도가 나뉘어 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매긴다. 일부 종합소득이 7200만원 넘는 직장인은 별도 보험료(3.06%)를 낸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 재산, 자동차에 보험료를 낸다. 종합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면 재산과 자동차, 가구원 수, 남녀 여부, 연령 등을 따져 소득을 추정한다. 부과 대상이 원천적으로 다르다. 형평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직장가입자에게는 피부양자 제도가 있어서 2000만명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소득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80만명은 엄연히 소득이 있는데도 무임승차하고 있다. 이자·배당소득과 연금을 합해 7000만원이 넘는데도 무임승차 티켓을 이용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이런 무임승차 제도가 없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3560원을 부담한다. 직장인은 몇 억짜리 집이 있어도 보험료를 물지 않는다. 지역가입자는 허름한 연립주택에 월 3만~4만원을 문다. 서울 시내 85㎡ 아파트를 갖고 있다면 15만원 안팎이 나온다. 회사에서 은퇴한 50대가 지역가입자가 되면 이런 불합리를 겪게 된다.

지역가입자는 저소득 노인, 일용직 근로자, 은퇴자, 송파 세 모녀 같은 한부모 가정 등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가 많다. 임대업자, 큰 식당 주인 등 돈을 잘 버는 가입자도 있지만 그리 많지 않다. 매년 건보공단 지사에는 6000만 건의 민원이 줄을 잇는다. 더 이상 고치지 않고 버티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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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3년째 “신중 검토 중” 되풀이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건보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길 꺼리는 이유는 사실상 대선 때문이 아닌가”라고 기자단이 질문을 던졌다. 성상철 이사장은 “맞다. 표심을 의식해서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건강보험 부과체계에 있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이 오죽했으면 이런 소리를 했겠는가. 다음날 정부가 나서 “건보공단 이사장의 발언을 확인한 결과,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다르다. 성 이사장이 ‘정부가 조속히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표심을 의식해서 미뤄선 안 된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게 아니다. 여러 언론에서 이사장 발언이 마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처럼 지적한 부분이 있는데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라고 해명했다. 해명이 아니라 구차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감에서 “피부양자가 돈이 많아도 보험료 하나도 내지 않거나 자동차 등에 대한 건보료 부과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 등은 저희가 다 공감하는 방향이다. 다양하게 따져보고 있는데 하나하나 분류해서 보면 손 봐야 할 게 굉장히 많다.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복잡한 문제인 만큼 개별적으로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3년째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총선을 의식하고 향후 대선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면 미룰 이유가 없다. 성 이사장의 지적이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연내 개편안 합의-내년 초 국회 처리

더민주당은 이미 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매우 과격한 안이긴 하지만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당정협의체를 만들어서 수 차례 논의했다. 단계적 시행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아마도 그 안대로 해도 보험료가 올라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들의 반발을 무시하지 못해서 개혁을 주저하는 듯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개혁이라면 진작 했을 것이다. 반발을 설득하는 게 정부와 여당, 나아가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을 몫이다. 그게 정치의 기술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 몸이다. 정부 안을 받아서 새누리당이 법률 개정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야가 각자 카드를 꺼내놓고 실현 가능한 타협안을 만들면 된다. 더민주 안대로 한 번에 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더민주당도 이 점을 잘 안다. 지난번 성 이사장이 나름 합리적 대안을 제시했다. 지역가입자부터 단계적으로 개편하면 된다. 자동차나 성·연령 등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불합리부터 개선하자. 그러면 박수 받을 것이다. 부족한 재원은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 중 소득이 높은 사람이 좀 더 부담하면 된다.

올해 말이면 건보 흑자가 20조원(현재 17조원) 정도로 늘어난다. 제도를 개선하기에 좋은 여건이다. 해를 넘기면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 지금처럼 표를 의식한다면 내년에는 사실상 손대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가을 정기국회에서 타협안을 만들고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 단계적으로 시행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