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실패한 도전」2부|"야당의원 40명은 내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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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대 국회 후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박대통령은 야당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의 지명후보를 당선시켰다. 그 때 야당의 선택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당시 야당은 온건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공화당의 두 파벌중 군출신이 중심이 된 구주류보다는 구자유당출신인 김성곤·김진만씨등 신주류 그룹과 가까웠다. 그랬지만 이효상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여러차례 냈던 야당이기에 이의장의 재선을 지지할 명분이 없었다.
더우기 공화당 구주류가 내세운 정구영씨는 파벌색이 없고 그 인품으로 보아 보다 공정한 의회운영을 기대할만 했다. 그랬는데 야당은 도리어 이효상 의장의 재선을 거들었다.
당시 의장선거에서 둘로 갈라진 공화당 양파는 각각 야당과 교섭했다. 신주류쪽은 은밀한 개별포섭을 한 반면 구주류는 단체교섭 형식이었다. 신주류의 개별 공작은 뒷 얘기가 있었다. 여야의원들이 친분관계를 통해 득표 활동을 펴는 것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 치더라도 이후낙·김형욱등 권력주변이 한몫의 역할을 했다는 소문은 정치를 그늘지게 했다.
구주류가 야당접촉에 나섰을 때는 이미 신주류의 입김이 야당을 휘감은 뒤였던 듯 하다.구주류는 야당쪽에 의회의 권위를 지키는데 협력하자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에 대해 비공식이지만 야당을 대표해 구주류쪽과 만난 S의원은 상임위원장 세자리를 야당폭에 내놓으라고도 했고 야당쪽에서 요구할 이의장 교체를 도리어 우리가 스스로 하겠다는데 야당에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며 조목조목 내세우는 논리에 밀리자 공화당의 권력 편향성으로 보아 항명파기 끝까지 버틸지도 알 수 없잖느냐는 궁색한 말로 확답을 피했다.
의장선거 당일 야당은 의원총회에서 1차투표는 기권하고 여당표의 분포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다면 1차투표후엔 당연히 의원총회를 열어 2차투표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어야 했다. 그런데 회의를 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공화당쪽 구주류는 대통령과 면담하기 위해 청와대에 가있었던 데 비해 신주류측은 다시 한번 야당의 표를 끌어 모으는 마지막 로비활동을 해 야당쪽 40표중 30여표를 얻어냈다.
마지막 득표공작의 수단이 무엇이었던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끄러운 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구주류는 야당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배했다. 그러나 구주류가 당내 다수파로 건재해 있음을 시위했고 대동령인 총재에게 당의 민주적 운영을 행동으로 요구한 효과를 얻은 듯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사태가 가리키는 이같은 정치적 의미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통령이고 총재인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괘씸한 반란으로 규정했다. 다음날 대통령은 항명주동자를 가려내 제명하라고 공화당 당무회의에 지시했다.
의원제명은 의원총회 과반수 결의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숫적으로 제명은 불가능한데도 대통령은 주동자 4∼5명은 제명하라고 엄명했다. 그러면서 당무회의가 제명조치를 못해내면 총재가 직접 나서서 결단을 내리겠다고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정씨의 얘기로 옮아가자.
박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대단히 흥분하고 긴장했던 모양이야. 더우기 공화당으로 보면 자기가 지명한 이효상보다 내게 던져진 표가 더 많았다는데 충격을 받은거야. 대통령은 이것을 소위 당명에 따르지 아니한 불충한 행위로 규정하고 김룡태·민관직등 주동자 몇 사람을 제명하라고 명령을 했다고 해. 나로선 입장이 미묘해. 내 자신 이를 저지하는 면도 있었지만 소극적이었거든. 아마도 대통령은 나의 그런 미묘한 입장을 고려해서 얘기를 나눌 셈이었던 모양이야. 마침 섬진강 댐 준공식이 있어 거기 대통령이 참석하는데 나더러 함께 가자고 전화를 해왔어. 나는 수락을 해서 대통령의 특별열차에 동승했어. 서울서 전북 임실역까지 기동차로 가서 준공식에 참석하고 다시 동차로 서울로 돌아오는데 약7시간 걸렸어.
그날 대통령 특별열차에는 장경정부의장·박충훈상공·안경정교통·이석제총무처장관등 6∼7인이 함께 탔어. 대통령자리 옆에 내가 마주앉고 다른 사람들은 저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그래 가고 오며 내내 나는 대통령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다른 여러가지 얘기도 했지만 국회의장선거 얘기도 하게됐지. 대통령은 반란표에 대한 불안을 얘기해. 결론은 반란행동은 괘씸한 일이다. 주동자 3∼4명은 제명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거야. 그래 내가 얘기를 했어요.
『당명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당이 징계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총재 개인 의사를 받들지 않았다해서 당명에 대한 반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각하가 조금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당명과 총재명령과는 구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정책도 당기구 토의를 거쳐 총재가 확인해 확정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그랬더니 대통령은 이번 일은 인사문제 아니냐. 이것을 의원총회에서 논의하면 저마다 이사람 저사람 갈려가지고 시끄러울텐데 어찌 백명이 넘는 회의에다 거느냐고 해.
『그거 일리는 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후보를 논의하게 되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이 갈리고 과열하면 신상문제까지 들추어져 당의 단결에 좋지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판단되면 총재이하 당간부들이 영향력을 발휘해서 의원총회에선 인사문제니 토론은 말고 당 간부진에서 내놓은 후보를 표결로 결정하자든가, 아니면 인선을 총재와 당의장에게 위임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다든가 그랬어야 할 것 아닙니까. 총재가 위임을 받아 결정했다면 이것은 당론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4∼5일전에 불쑥 국회의장 누구, 부의장 누구, 상임위원장은 누구다 하니까 이런 말은 각하께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이것은 당론이 아닌 것이지요. 그때 내 고민도 거기 있었습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그런 절차를 거쳤는데도 반발이 있었다면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제지했을 것입니다….
특히 의원들의 반발은 단순히 국회의장 문제가 아니고 분과위원장에 대한 불만들이 더 많아요. 거기다가 총재의 지명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그러니 당명이 아니다 그런 말도 옳은 말이고, 그래 나도 적극적으로 만류를 못하고 말았어요.』
거기에 대해 대통령은 고충을 얘기해. 공화당내에 파벌 다툼을 없애야겠다. 김종필이 곧 당의장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또 그 쪽이 독주한다 싶으면 소외된 쪽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느냐. 그래 김종필한테도 한 쪽에 치우치는 일은 말라고 여러가지 당부를 했다고 그래…. 요는 당분간 총재가 당을 통제할 생각인데 명령이 안통하면 일하기가 어려워 진다는거야.
나는 어려운 문제는 모두 극복했으니 이제는 대통령께서 명령이 아니라 민주적 당운영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했어. 『이번 국회요직을 지명한 방식은 민주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발을 부른 것입니다. 이 다음 이런 일을 결정할 때에는 먼저 토의를 하도록 국회의원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거기서 결론이 나면 이를 존중해야 하지만 대개의 경우 제각기의 정치입장이 있으니까 결론이 나기 어려워요. 결국엔 당의장하고 총재한데 일임하게되고 당의장이 의원총회 분위기를 참작해 총재에게 건의하면 이를 참작해 결정을 해 주십시오….
어쨌든 이번에는 이왕 지나간 일 아닙니까. 너무 깊이 생각말고 앞으로는 의원총회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좋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면…. 어쨌거나 공화당내 50표가 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야당40표 그거 얼마든지 제 표로 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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