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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위층 너무 좋아한다|디버 사건이 남긴 대미로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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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1년 전부터 한국이 워싱턴의 길잡이로 크게 의존해 온「마이클·디버」전 백악관비서실차장의 역할은 지난 12일 하원조사소위가 그의 위증을 조사하기로 가결함으로써 끝장이 났다. 로비이스트의 생명인 워싱턴 관리들과의 연결이 그 표결로 깨끗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가 유죄판결을 받든 않든 간에 그는 워싱턴정가에서 제1의 기피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년여에 걸친 그와 한국과의 관계를 결산할 때가 있다. 그것은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계속되어야 할 대미로비 활동을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우선 구체적 수지계산으로 따져 볼 때 한국은 크게 손해를 봤다. 「디버」와의 첫 관계는 필립모리스 담배회사의 로비이스트로서 서울을 방문한 85년 여름과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서울에 대한 로비활동이 주효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양담배를 수입하게 되었다. 필립모리스사가 처음에 노렸던 독점 진출의 길은 막혔지만 미국 2대담배회사중 하나인 이 회사가 큰 혜택을 받게 된 것은 확실하다.
한국은 그를 로비이스트로 고용하면서 국제문학협회가 47만5천 달러, 대우가 25만 달러, 합해서 72만5천 달러의 거액을 그에게 쏟았다.
이 액수는 1백50만 달러를 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계약금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50억 달러의 산성비 처리기금을 따낸 캐나다가 10만5천 달러를 낸 것에 비하면 엄청나다.
또 대부 수천만 달러의 B-1 폭격기의 발주대수를 늘리기 위해 「디버」를 고용한 로크웰 인터내셔널사가 25만 달러를 낸 것과 비교해도 결과를 놓고 볼 때 타당성 없는 액수다.
한국 측은 「디버」가 김기환 해외기획단장(당시)의「레이건」면담을 실현시킨 것을 보고 그의 능력을 과대평가 했던 것 같다.
뉴욕 타임즈지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국무성의 한 관리는『장관급도 못되는 외국관리가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단장이 「레이건」대통령을 만난 2주 후에 한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두 번 째로 미 통상 법 301조에 따른 조치로 지적소유권 문제를 얻어맞았다. 「불가능에 가까운」「디버」의 알선도 결국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점에 관해 뉴욕 타임즈는『대부분 아시아의 관리들은 미국대통령이 사업하는 친구를 도와줄 힘이 제한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워커」주한미국대사도『한국사회는 개인친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날치기로 일을 해결하려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우 쪽에서도 1천2백만 달러에 달하는 철강수출 부정혐의 사건에서「디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디버로비 회사는 대통령과의 친분만 있지 복잡한 통상문제에 있어서는 경험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구체적 결과만 놓고 볼 때「디버」를 고용한 조치는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오히려 박동선 사건을 다시 연상시키는 역효과만 초래한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받게 될 타격은 70여만 달러의 돈에 비할 수 없는 이미지의 문제일 것 같다. 그것은 박동선 사건에 이어 한국은『로비에 미숙하다』는 역겨운 이미지다.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박동선사건과는 다르다. 박동선 사건이 노골적인 돈 거래로 영향력을 사려고한 미국 국내법상의 불법행위였던데 비해 이번 사건은 합법적으로 로비이스트를 고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디버」가 공무원윤리 법을 위배했다는 가, 의회증언에서 위증을 했는가에 있는 것이지 한국이 얼마를 주고 그를 고용했는가는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문제될게 없다. 워싱턴에서처럼 로비이스트를 자 척하는 전직의원·고관·장성이 득실거리고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일을 해내기 어려운 행태 속에서는 그들을 로비이스트로 고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대리전쟁을 하고 있는 니카라과나 앙골라까지 워싱턴에 로비회사를 두고 있고 주요 법안이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때는 대통령도 의원들을 저녁식사에 초청해서 로비를 하고 있는 것이 워싱턴의 품속도인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행 태가 안고 있는 윤리문제는 미국인자체의 문제일 따름이다.
한국 로비의 미숙성은 대개 두 가지로 지적되고 있다. 하나는 저돌 성이다. 어떤 문제가 터지기에 앞서 미리부터 설득작업을 벌이지 않고 일이 터진 다음에 다급하게 정리되지 않은 논리를 들고 의회로 달려가서 우격다짐의 하소연을 늘어놓는다는 지적이 지난해까지 만해도 의회 쪽에서 나왔다. 그와 같은 행태는 다분히 누구누구를 만나서 설득을 했 노라는 보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관료적 속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럴 경우 당사자는 설득 당하기는커녕 귀찮은 손님으로 마지못해 들어주는 응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위층을 좋아하는 습성이다. 미국행정부는 대통령이나 장관이 전결할 수 있는 행동반경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습성이다.
같은 논리로 이번 「디버」의 경우처럼 거물급 로비이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일본도 70년대에 다수의 거물급 전직고관들을 고용했다가 요즘은 방향을 크게 바꾸어 특정문제의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디버」가 「레이건」대통령면담은 주선했지만 정책변경에는 한치의 영향력행사도 할 수 없었던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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