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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서둘러야 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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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본과는 이미 2003년 말부터 FTA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양측이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2004년 말부터는 FTA 협상이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일 양국은 산업구조가 유사하다. 따라서 한.일 FTA가 체결되면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실행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시 약속한 사항들을 착실히 이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경제발전 수준이 한국 정도인 나라와 FTA를 고려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과의 FTA는 상당 기간 후에 논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미국과의 FTA를 더 가까운 시기에 추진해 볼 만하다. 한국으로서는 한정된 협상 인력을 그다지 큰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소규모 교역국들과의 FTA 협상이나 가까운 장래에 성공할 가능성이 작은 나라와의 FTA 협상에 투입하기보다는 기대 효과도 크고 협상 개시가 당장 가능한 미국과의 FTA 협상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 FTA로부터 양국은 장기적으로뿐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상당한 혜택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양국 경제가 상호 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연구보고서 '한.미 간 자유무역? (Free Trade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필자와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위원이 2001년 공동집필)에 따르면 농업을 포함하는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장기적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은 30%, 미국의 대한 수출은 49%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증대 효과는 한국은 최대 2.41%, 미국은 0.13%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서비스무역에 관한 보호장벽을 제거한 효과까지 감안하면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국이 FTA를 체결하게 되면 두 나라 산업 간에 전략적 제휴가 늘어나 이들 부문의 경쟁력 증가도 예상할 수 있다.

FTA를 통한 무역전환 효과로 인해 한국은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대미 무역흑자도 줄임으로써 미국의 대한국 통상압력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FTA 체결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쇠고기 수입 문제 등 상당수 통상 현안이 해결될 수 있다. 즉 대미 통상관계를 원만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미국과의 FTA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실익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FTA는 또한 한.미 양국 사이의 정치.외교.안보적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도 있다.

최근 주한미군의 변화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놓고 양국이 이견이 있어 전반적인 한.미 동맹관계에 불확실성이 높아진 점 등을 고려할 때 FTA는 양국 관계에서 경제적 혜택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FTA를 통해 더욱 많은 미국인과 미국 기업.자본, 그리고 미국 상품이 한국에 진출하게 되면 한국의 안정과 평화가 미국인과 미국 기업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안보 문제를 자국민과 자국 기업의 안보문제와 직결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얻는 혜택도 상당할 것이다. 농산물과 서비스업의 수출증대를 통한 소득증대는 물론 상당수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이득을 보고 동북아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전진기지로서 한국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은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의 안정적 발전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이유가 명백하고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선뜻 이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양국 모두 취약 부문의 거센 반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농업과 법률.의료.교육서비스 등 일부 서비스산업의 반발이 거세고, 미국도 철강.의류산업 등의 반대를 설득할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민족주의 분위기와 반미감정도 정책적 결단에 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미 FTA의 순조로운 추진을 위해서는 우선 FTA 등 자유무역정책.시장경제.세계화 등과 대미 수출이 한국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론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세계화 추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이들 산업에서 퇴출되는 인력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최인범 서강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