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회고록(18)-「실패한 도전」2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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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65년 12월의 국회의장단 선거는 무려 일곱차례 표결을 했다. 공화당 총재인 박대통령은 이효상의장을 재선출토록 지시했으나 구주류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초 박대통령은 2년전의 지명번복이 맘에 걸려 이번엔 정구영을 지명 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대통령의 심경변화는 이후락비서실장의 공작탓이라고 했다. 이실장은 박대통령의 학교동창등 경북인맥, 당쪽의 김성곤, 그리고 김형욱정보부장까지 동원해 의장단유임운동을 했다. 지난2년 이의장은 한일협정비준안·월남파병등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느라 야당의 수모도 많이 겪었다. 그를 바꾸는 것은 야당이 펴온 의장불신임 공세를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까지 폈다.
구주류는 국회의장단 지명변경엔 이렇듯 대통령 주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했다.
김용태 신형식 박종태 예춘호등은 김종필을 찾아갔다.

<이 기회에 당에 대한 외부작용을 꺾지 않으면 당은 점점 더 무력해진다. 우리는 정구영선생을 의장으로 밀겠다.>
김종필도 승낙을 했다. <일단표를 모아보자. 그런뒤 대통령에게 지명변경을 건의해보자.> 그러면서 득표자금도 내놓았다. 정구영씨의 그때 얘기.
11월 하순에 대통령이 의장 인선을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기에 나는 원칙적으로 이효상씨를 재추천하는 것이 옳을것입니다 라고 했어. 그 양반에게 이런 내 대답이 뜻밖이었던 모양이야. 이 노인도 맘에 없는 소리를 하나 생각했는지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어째서 그렇습니까>라고 해.
그래서 내가 국회법 정신에 대한 내나름의 해석을 얘기했어.
세계 여러나라 의회법을 보면 국회요직임기는 의원임기와 같게 한 예가 더 많다. 그런데 일부국가에서 임기중간에 개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원래 의장은 다수당에서 나와야 하는데 연립으로 다수당이 된 경우 2년을 지나는 사이 연립의 변동으로 다수당이 달라질 수도 있고, 혹은 단일 다수당으로서 다수당의 변동은 없다해도 다수당내의 사정, 즉 의장이 소속정당의 신임을 잃어 바꾸어야 할 필요가 생길수도 있다. 그럴경우 임기4년이면 의장 불신임안을 내서 교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리되면 의회의 체통이 손상되니까 중간교체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의장을 지명하던 당시와 사정변경이 없다면 유임이 원칙이 아니겠느냐고 했지.
대통령은 <이의장도 당책을 어긴 일이 자주 있었지 않습니까>라고 해. 나도 그렇다고 했지. 내각책임제 개헌이니 정계개편 얘기, 공화당의 의원직 사퇴론, 그런게 대표적인 것들이 아니겠느냐고 하고, 그렇지만 그것들이 심히 곤란한 당내혼선이었던지는 대통령께서 판단할 일이다.
가령 의원직 사퇴론 같은 것도 해가 되기보다 공로일지도 모르잖겠느냐고 했지. 그랬더니 대통령이<공로라니요>라고 되물어.

<그렇지요. 당시엔 야당이 국민여론을 일으키려고 총사퇴론을 편것인데 야당의 흥분을 완화시키려는 정치적 고등전술로 공화당도 총사퇴해야 한다고 했을수도 있지요. 또 한가지 각하께서 당총재로서 이효상씨와 그같은 고등전술을 쓰기로 했다면 더군다나 이것은 각하만이 판단할 일이지요.> 그랬더니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면서<선생님도 거기까지 상상하시다니! 저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라고 유머로 받아넘기고 말더군.
그런 면담이 있었는데 12월초부터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 어떤 간부는 대통령은 선생님을 지명할 생각이더라고 전해. 그래 나는 그거야 의원총회에서 논의해봐야지 그러고 말았어. 그랬는데 12월12일인가 대통령은 의장단은 유임이다라고 명령을 해왔어.
이렇게되니 의원들이 반발이야. 매일같이 수명씩 내게 와서 당총재인 대통령의 지명은 의장단후보는 의원총회가 선임한다는 당헌을 무시한 것이니 공식지명이 아니다, 따를수 없다고 해.
총재가 잘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반발해 당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적당한 기회에 총재에게 당헌을 참고해 일처리를 하도록 진언키로 하고 이번은 그대로 따르는게 좋겠다고 했지. 그런데 내만류가 통해야지. 더욱이 의원들의 반발은 의장단 지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상임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더 많은듯 해. 그러니까 내 일만이 아니고 자기네 일이니 내가 뭐라고 해.
투표날이 닥쳤는데 내가 반란표로 당선되어도 큰일이야. 총재는 총재대로 면목이 없어 쩔쩔매고 나는 총재의 지명을 받지않은 국회의장으로서 일 해가기가 어려울거고. 그래 내가 김동환총무한테 비서를 보냈어.
상황을 보아하니 큰 혼선인데 내가 당선된다해도 의장직을 수락치 않겠다. 아마도 1차에서 과반수 득표가 없어 2차투표를 해야 할 듯한데 그런 형편이 되면 투표를 미루고 의원총회를 열어 달라, 그러면 내가 의원총회에서 의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이유를 설명하마라고 했지. 김동환군이 그러겠노라고 회답을 보내왔어.
12월17일 의장선거 1차투표는 정구영 69, 이효상 55표로 정씨가 앞서기는 했으나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를 얻지못했다. 야당이 기권했기 때문이다.
1차투표가 끝난뒤 전례용당의장서리, 백남억 예춘호 김동환등 당직자들이 청와대로 갔다.그들은 대통령을 만나 지명을 바꿔주도록 건의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후락비서실장은 면회를 주선해주지 않았다. 당간부들은 2시간을 버티었지만 대통령은 당간부들을 안만나겠다고 한다. 맘대로 처리하라는게 대통령의 말씀이다라고 이실장은 말했다. 다시 정구영씨의 얘기를 옮겨보자.
1차투표가 끝나자 김종필이 내게와서 선생님, 의원총회전에 할일이 있으니 1시간쯤 뒤에 하는것이 옳겠읍니다고 양해를 구해. 무엇때문이냐고 했더니 <아닙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라더군. 1시간이라더니 3시간도 넘게 지체했어. 김종필군도 청와대에 갔던 모양인데 대통령을 못만났다는거야. 결국 헛걸음하고 의원총회를 열었어. 내가 약10분 신상발언을 했어.

<이번 지명이 민주절차를 무시하고 명령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건 나도 안다.그렇지만 저질러진 일이다. 1차투표로 그 의사는 표시되었으니 적당한 기회에 총재한테 당헌을 참고해 일을 해주도록 건의하기로 하고 총재지명을 따르자. 나는 거듭 말하지만 의장에 당선한다해도 결코 수락않겠다.>
다시 의장단 득표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2차투표에선 이효상이 정확히 재석과반수인 88표를 얻어 가까스로 당선됐다. 정구영은 1차투표때의 득표를 유지했음에도 이효상이 과반수에 도달한 것은 1차때 기권했던 야당이 2차에서 이효상을 밀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그들이 지명하는 1석의 부의장후보에 대한 여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화당쪽 지명후보를 민다고 했다. 그렇지만 야당은 여당의 소수파와 야합한 탓에 도리어 그들의 지명케이스 부의장은 3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수모를 겪었다.
아무튼 의장단 선거에서 공화당은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기록을 남겼다. 그랬는데 야당쪽은 여당의 당내민주주의도 거들지 못하고 그들이 이효상의장 불신임 결의안을 냈던 과거와도 모순된 행동을 한데다 그들이 추천한 부의장 후보도 여당의 놀림감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왜 야당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정구영씨는 그 내막을 알면서도 이를 말하려 하지않았다.

<2차 투표가 끝나자 의원들이 내게 와서 선생님이 신상발언만 하지않았더라도 3차 결선투표까지 가게해 야당을 다그쳐 볼 수 있었을텐데라며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야당이 야당노릇을 못한다고 개탄을 해. 사실 의장단 선거를 위해 대통령 주변까지 동원된 대야공작은 그렇다 치고 1차 투표가 끝나고 2차 투표에 들어가기까지의 3시간동안 야당의 33표가 이효상에게 가게된 이면의 부끄러운 얘기가 있어. 그때 야당이 진정 민주세력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려했다면 일단은 공화당의 당내민주주의에 편들어야해…. 대통령의 공화당에 대한 독단과 위압은 국회에 대한 독단이고 위압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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