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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내부 도전에 붕괴 … 주민 삶 개선이 북한 살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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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14면

2014년 유엔 북한 인권 연설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외교관이 된 오준 대사. “내게 뻗은 손은 반드시 잡는다는 원칙으로 사람들을 대한다”고 했다.

‘말의 힘’은 강했고 울림도 컸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저 ‘아무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For South Koreans, People in the North are not just anybodies). 수백만의 우리 한국인들에겐 아직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중략) 훗날 우리가 오늘 한 일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들을 위해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권을 가진 북한의 모든 남자, 여자, 소년, 소녀들의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처음 상정된 2014년 12월 22일 오준(61) 주유엔대사는 이렇게 연설했다. 원고 없는 즉흥 연설이었다. 국내 젊은 층에, 국제사회에 그의 연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북한 이슈가 분단된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새삼 일깨운 계기가 됐다. 이후 오 대사의 ‘감동 연설’은 몇 차례 더 있었고 그때마다 언론과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일종의 ‘팬덤’도 형성됐다.


통상적인 대사 임기 3년을 채운 오준 대사를 22일 전화와 e메일로 만났다. 제71차 유엔 총회로,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 대응으로 분주한 때라 뉴욕의 밤늦은 시간에 연결이 됐다.


-5차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대북제재 결의안 전망은 어떤지요.“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지칭되는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핵실험을 5~6차례 하면서 실전용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다섯 번째 핵실험을 이번에 했고, 스스로가 핵탄두의 표준화 및 소형화를 해냈다고 발표했거든요. 북한의 실전 핵능력 보유가 가까워진 것으로 보는 거죠. 이제 (6차 핵실험 같은) 또 한 번의 도발과 한 번의 결의안에 일희일비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핵무기를 5개 핵국가만이 보유하면서 군축을 추진한다는 핵비확산 체제가 45년 전 출범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거여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겁니다. 세계 핵비확산 체제가 이기느냐 북한 정권이 이기느냐의 문제입니다.”


-북한의 핵 도발을 국제사회가 제재할 때 걸림돌은 늘 중국이었습니다.“중국도 핵비확산의 수호자인 5개 핵보유국 중 하나입니다. 흔히들 지적하듯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핵확산을 막기 위해서, 또한 그보다 더 현실적인 고려로 동북아에서 미국·일본·한국의 군사력 강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라도 대북제재 강화에 반대하지 않을 걸로 봅니다. 결의안 2270호(3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제재) 도출 이후 북한의 대외 무역이 줄고 김정은의 비자금도 절반으로 줄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선 핵무장 주장도 나옵니다.“핵무기 확산은 전 세계, 특히 핵보유 강대국들이 어떻게든 막으려는 것인데, 우리 자신이 핵비확산 체제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도움이 안 되겠죠. 다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북의 핵능력에 대응하는 것은 미사일 방어든, 미국의 핵우산 강화든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핵 균형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반드시 핵 보복을 받는다는 확신에 기초한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으로 가능했죠.”


-지난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유엔 안보리에서 영어로 연설하던 중 한국말로 “이제 그만하세요”라며 도발 중단을 촉구했습니다.“핵·미사일의 개발이 북한 주민뿐 아니라 북한 정권이 생각하는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북한 지도부에 말하려 한 겁니다. 외부에서 북한을 침공하려는 국가가 없을 뿐 아니라 과거 어느 나라든 대부분의 독재정권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도전으로 무너졌죠. 만일 북한 집권세력이 정권 유지가 목적이라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개방·개혁으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핵실험 와중에 북한에 심각한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을 돕자는 얘기를 꺼내는 게 어려운 국내 분위기입니다. 유엔에서는 어떤가요.“유엔은 수해 관련 대북 지원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피해 복구의 1차 책임이 북한 정권에 있는 건 틀림없지만 북한 주민의 고통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금년 들어 미사일, 핵실험에 들인 비용이 2억 달러란 추정이 나오는데, 수해 피해액이 1억5000만 달러라고 합니다. 안타깝죠.”


오준 대사의 선친 오우홍(1913~89)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외무부 초기 요원으로 근무했고, 앞서 일제 강점하에선 여수 독서회와 노조활동으로 항일 운동을 주도하다 2년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2006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오 대사는 저서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에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국가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넣게 됐다고 했다.


-선친의 삶이 영향을 미쳤을까요.“선친은 정부 수립 후 12년간 1세대 외교관으로 근무하셨고 1989년 돌아가신 후 7년 뒤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셨는데, 그런 경험에서 얻은 성품이 물론 저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주셨죠. 저는 아버님이 외교관으로 활동하시거나 어머님이 교수로 강의하시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냥 저의 부모님으로서 영향을 주신 것 같습니다.”


-2030세대 ‘팬’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면.“팬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스티븐 호킹처럼 인간을 걸어다니는 컴퓨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다른 분들과, 어떤 때는 만난 적이 없는 분들과도 각종 방법으로 생각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도 그런 목적으로 썼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키워드도 ‘열린 마음과 생각’입니다. 인간의 발전 역사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 과정이었고, 그것은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오준 대사는 37년 외교관 경력 중 20여 년을 다자외교 분야에서 보냈다. 2004년 외교부 내 연주동호회를 만들어 자선 연주를 정례화했고, 마라톤 동호회 초대 회장도 지냈다. 유엔에 부임해선 유엔 각국 대사들로 구성된 UN ROCKS 밴드를 결성해 화제를 모았다. 연하장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돌린다.

대학 시험 쳐 놓고 시작한 오준 대사의 드럼 연주 솜씨는 수준급. 외교부와 유엔에서 ‘록 밴드’를 창단했다.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젠틀맨’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경기고, 서울대(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외교부에 들어갔다. 다자외교조정관, 싱가포르 대사를 거쳐 2013년 9월부터 유엔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기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지냈다.

은퇴하면 눈치 안 보고 드럼 칠 수 있어 “은퇴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드럼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더라도 공무원이 일은 안 하고 다른 짓 한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 안 해도 되기 때문이죠(하하). 완전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드럼 연주는 저에게 뭐든지 시도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은 집중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공무원 조직은 정형화된, 어쩌면 건조한 조직입니다. 일을 위해 모였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함께 결과물을 생산하는 건데, 인간적인 유대를 맺음으로써 일에 애착을 갖고 생산성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차례 글과 연설에서 한국 사회 문제를 언급했는데.“짧은 시간에 국가 독립, 전쟁, 경제·사회 발전, 민주화를 이루면서 달려 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부담이라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사회를 만들어서 뒤처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죠.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유지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며칠 전 유엔총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이나 국가를 돕는 것이 ‘올바른 일(right thing)일 뿐 아니라 지혜로운 일(smart thing)’이라고 했는데, 와 닿는 바가 큽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외신의 비판도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평가가 있습니다.“반 총장께서 국내정치적 관점에서도 거론되고 있어 조심스러운데요. 저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유엔이 과거보다 더 세계적이고 인류보편적인 가치관을 대변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임기 내내 있었습니다. 임기가 100일 남았는데, 반 총장이 마지막 참석하는 이번 총회에선 각국 국가 원수들이 기조 연설 등에서 반 총장의 업적을 평가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 대사는 “지난 3년은 분쟁과 테러,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이 세계를 위협하고, 국제사회가 지속가능개발목표(SDG)와 기후변화협약 채택 등을 위해 힘을 모은 시기였다”며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의장으로 이 과제들을 다룰 수 있어서, 특히 마지막 임무를 제가 잘 아는 분야에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활동가 명함 들고 어려운 이 도울 것-시기상 은퇴 인터뷰처럼 되었습니다. 외교관의 덕목을 말씀해주신다면.“외교관은 국가와 국가 간 관계를 관리하는 직업입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조직체인 ‘국가’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국가, 민족에 대한 생각이 정리돼야 좋은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귀임 후 계획은 세우셨는지요.“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퇴해 시민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습니다. 시민단체, 즉 NGO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분야에서 일을 배우고 해보려고 하죠. 외국의 시민사회 대표들을 만나면 명함에 ‘사회활동가(activist)’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을 보고 부러웠는데, 저도 그런 명함을 가져 보는 게 희망입니다. 활동 분야도 정해둔 게 있는데 말하지 않으렵니다.”(웃음)


김수정 국제선임기자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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