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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배워야 할 기술 좋은 관계를 열망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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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4면

어쩌면 모든 사랑 이야기는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이름만 바뀔 뿐 누구를 넣어도 한번은 겪어봤음직한 일들이 펼쳐지니 말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ㆍ47)의 소설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스물셋에 쓴 처녀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에서 나와 클로이가 비행기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2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에서도 건축 공사 현장에서 만난 라비와 커스틴은 언뜻 본 순간부터 서로의 매력을 포착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대 커플이 서로를 만날 확률을 5840분의 1이라고 계산하고 둘 다 왼쪽 발가락에 커다란 점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필생의 사랑이라고 믿는 것과 달리, 결혼한 지 16년이 된 부부가 되어 욕실 관리 문제에 대해 꼬박 이틀간 정상회담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대는 정도랄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비록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삶이 지나치게 무료하고 단순해 보여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드 보통에게 e메일로 물었다. ‘닥터 러브’라고 불릴 만큼 사랑에 천착해온 철학자이자 작가답게 3만자에 육박하는 장문의 답이 돌아왔다.

“결혼이란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1993년 첫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속편 격으로 쓰인 이번 책은 인물과 배경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관통하는 본질은 같다. 전작 탐독 여부와 관계없이 무리 없이 읽히는 이유다. (전작의 팬이라면 ‘나’와 라비가 동일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굳이 낭만주의자를 자처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이 사람이 내 영혼의 짝이라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있고, 바로 그 사람 때문에 당황스럽고 난처한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황홀감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그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p.28) 한마디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고 말이다.


이것이 이 ‘사랑꾼’의 갑작스러운 변심은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해”라는 말 대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해” 같은 달달한 명언도 남겼지만, 일찍이 경고한 바도 있다. “사랑의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철학의 역사는 현상과 실재 사이의 차이에 냉혹한 관심을 가져왔다”(『왜 나는…』)거나 “사상의 역사를 보면 세계를 둘로, 곧 실재하는 현실 세계와 덜 현실적인 세계로 나누어보도록 이끄는 유혹이 매우 강하게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사랑일까』) 등 우리가 보고들은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누누이 말해왔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내놨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언제 다시 소설을 쓸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사랑에 대해 쓸 것이 충분히 생기면’이라고 답해왔다. 사람들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맹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부분의 소설은 실제 사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게 요즘 사람들이 올바른 관계 맺음을 힘들어하고 헤어질 때마다 저주받았다고 느낄 만큼 괴로워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자 한 건가.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는 커플의 탄생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다.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그것이 수반할 수 있는 문제점은 모두 숨겨버린다. 괜찮은 사람이라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다 해도 결국 커플로 맺어지고 이야기는 끝나버리니 말이다.”


예를 들면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우선 일에 관한 문제가 있다. 극중 대부분의 캐릭터는 직업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적다. 일은 어디선가 계속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명한 사랑 이야기라면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줘야 한다. 건축가를 꿈꿨던 라비가 결국 안정적인 사무직을 택하고 그로 인한 좌절감과 스트레스 모두 배우자와 나눠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는 것처럼.”


육아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에서 아이는 성숙한 사랑의 징표이자 부수적인 것으로 등장한다. 그 아이들은 절대 울지 않고,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며, 대체로 똑똑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부부의 참을성을 한계치에 도달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거실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널려있고, 식탁 밑에는 음식 부스러기가 가득하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사라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숭고한 삶은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낭만주의는 이제 그만…발전적인 포스트 낭만주의 필요” 드 보통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이상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가 그렇지 않은 우리 삶과 비교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관계를 굉장히 초라하고 불만족스러우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읽고 보는 것을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 삶처럼 문제가 가득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섭취함으로써 그것들을 헤쳐나갈 지적이면서도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 소설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사랑을 배워야 할 기술에 비유했다. “우리 사회는 교육에 굉장히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편향적이다. 이를테면 수학과 과학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목으로 여기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감정적인 기능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읽어내고, 화를 달래고, 이해시키는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습득한 감정 기술이 모여 ‘정서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확립되는 것이다.”


정서 지능이 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과 자제력, 통찰력 등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자질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둘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우리는 드러나는 표면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말인가. “그렇다. 내 소설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등장한다. 하나는 성인 남녀간의 사랑, 다른 하나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역설적이지만 부모는 아이로부터 사랑을 배운다. 막 태어난 아기가 운다고 해서 우리는 그에게 비난을 퍼붓거나 자기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때리거나 발로 찬다고 해서 겁을 먹거나 화를 내지도 않는다. 단지 그가 배가 고픈지 잠이 부족한지 원인을 찾기에 분주하다. 상대가 성인이라 해도 이처럼 행동의 이면을 읽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그들의 분노와 심술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정말 우리는 이제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팍팍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 걸까. 사랑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나 기대도 가지면 안 되는 걸까-. 드 보통은 “낭만주의는 여전히 내게 매우 중요한 단어”라고 말했다. “1750년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주요 사조가 됐지만 우리는 그 개념들이 때로 재난을 낳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배우자는 반드시 소울메이트여야 한다거나 항상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야 한다는 류의 그릇된 기대가 관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새롭게 기댈 언덕으로 ‘포스트 낭만주의’를 제시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낭만주의를 가장 우선 순위에 둘 필요는 없다. 다만 포스트 낭만주의라고 해서 냉소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없는 관계가 지속될 리 만무하니까. 낭만 자체보다는 좋은 관계를 열망하는 것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랑에 대한 배신은 아니다. 우리는 세탁방법처럼 사소한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꾸며내야 할 때도 있다. 이처럼 심리학적으로 성숙한 태도가 더욱 희망찬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소설의 원제인 ‘사랑의 과정(The Course of Love)’ 처럼 사랑은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할, 결코 끝나지 않을 숙제일지도 모른다. 결혼 16년차에 접어든 라비가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학 개론 공부가 필요하다면, 20여 년 만에 완성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드 보통의 4부작은 필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은행나무?Mathias 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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