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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환자의 전이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몸에 병이 생겨 의사를 찾는 사람은 평소 남들에게는 말하기 꺼리던 속사정을 말해야 하고 내놓기 민망스러운 속몸도 드러내야 한다. 요컨대 은밀함을 타인인 의사와 나누어야 한다.
치과의사 앞에서 꼼짝없이 『아』하고 입을 벌리는 환자의 뇌리에는 어려서 목에 걸린 생선가시를 빼주던 자상한 어머니의 손길이 연상된다. 그리고 비뇨기과의사앞에 나선 남자는 어려서 바지춤을 내리게하고 『어허, 이 녀석. 고추가 남자다와지는데』라면서 놀려대던 심술궂은 삼촌얼굴이 생각날 것이다.
옛날 어려서 남에게 향했던 감정이 지금에 와서 어느 구석이 약간 그 사람과 닮은 다른 사람에게 향해 부지불식간에 생겨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전이」라 부른다. 즉 그때 그 느낌이 지금의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옮겨온다」는 의미다.
어려서의 대인관계란 대개 부모·형제·친척·선생님 등과의 관계가 거의 주종을 이루고, 특히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전이는 부모를 대했던 감정이 지금의 부모아닌 다른 사람에 행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은 병이 나면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심리적 추행이 잘 일어나고 따라서 환자는 의사에 대해 전이현상을 잘 일으킨다. 그래서 믿었던 부모밑에서 큰 사람은 병이 나면 의사를 부모처럼 생각한다.
자기 의사를 「세상에서 제일 용한 의사」라고 믿으며, 어려서 그랬듯이 입원중에도 부모같은 자기 의사를 즐겁게 해주려 애쓰고 또 따른다.
반대로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환자가 되었을때 그의 굶주린 사랑과 인정을 의사에게서 받으려는 무의식적 소망이 생긴다. 따라서 자기병세를 올바로 말해주기 보다는 의사가 듣기 좋아하는 쪽으로 왜곡하거나 보태서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려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 역시 의사를 부모보듯 하여서 조금만 기대에 어긋나도 무섭게 화를 내며 권고에 따라주지 않고 복약을 게을리하며 싸움을 걸기도 한다.
전이란 현실상홍에서 볼때 이렇듯 조리에 맞지않는 바가 크며, 또 그 감정의 깊이와 정도가 무척격하다. 그리고 이런 전이는 한번 생기면 꽤 오래가는 것이 보통이다.
의사쪽에서 본다면 환자의 전이가 좋은 쪽, 즉 의사를 존경하는 쪽으로 발전한다면, 그리고 그런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면 이런때의 전이는 병을 치료하는데 플러스적으로 작용하므로 일부러 전이를 없앨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존경의 도가 지나치다면 뒷생각을 해서 약간은 거리를 두어야한다.
조두영<서울대의대 정신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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