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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14. 카메라오브스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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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다 해도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박스에서 쏟아져 내린 나체의 어떤 여자도, 액자 뒤에 숨어 내부를 염탐했을 카메라 렌즈도 그날 거기서 처음으로 보고 알게 된 것들이었다.

더블은 말없이 고기를 구웠다. 조금씩 익어가는 고기를 한 번씩 뒤집으며 자신의 생각도 함께 이리저리 뒤집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잠깐씩 나를 건너다보았다. 마치 그의 눈빛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먹어 봐...”

더블이 잘 구워진 고기를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무엇도 입 안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죽음이라는 걸 처음 만났었다. 단순한 건망증 증세로 병원을 찾았고 정밀 검사 후 뇌 암이라는 걸 알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단계라는 걸 알아내고 마지막을 맞는데 불과 두 달이 걸렸다.

돌아가시기 전 날 밤 아버지는 무슨 이유인지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엄마는 오후에 집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그날은 미영이가 아버지 곁에서 밤을 새는 날이었다. 잠깐 들른 나까지 아버지는 성화를 부려 곧장 돌아서게 했다.

이유는 성가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후로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며 우리에게 불평을 늘어놓으셨다. 어차피 새벽에 엄마가 오시게 되어 있었으므로 우리는 밤 열시쯤 병원을 나섰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위독하시다는 거였다. 우리가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혼수상태였고 두 시간 후 돌아가셨다.
도대체 전 날 밤 열시에서 다음 날 새벽 다섯 시까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의 죽음엔 언제나 비밀이 존재한다, 로빈윌리엄스의 사망기사를 보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면서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말처럼 모든 죽음엔 비밀이 존재할 것만 같았다. 죽은 사람은 자기 죽음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기에....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은 영원히 침묵으로 봉인 될 것이기에....

하지만 그, 비밀이라는 말은 에프의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밀은 에프의 삶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죽음 이후 하나씩 비밀이 풀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생각이 가득 찬 얼굴로 한참 나를 쳐다보던 더블은 내 앞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내가 단숨에 들이키자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표정이 누그러졌다.

“술은 마실 수 있겠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더블도 자신의 잔을 비웠다. 더블은 내 잔에 다시 술을 가득 따라놓고는 자신의 잔을 훌쩍 비웠다. 그러곤 다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도 더블을 쳐다보았다. 투 블럭으로 가파르게 깎아 올린 옆머리가 제법 까맣게 자라고 있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했으니까 우리 아까 거기서의 일은 잊어버리자.”

“ .... ”

“난 거기 가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

더블은 애써 내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언젠가 더블과 야구장엘 갔던 적이 있었다. 늘 꼴찌 하는 프로팀이었지만 우린 둘 다 그 팀을 응원했다.

“.... 올 해 봄 야구장 갔던 기억 나?”

내가 물었다.

“왜 안나. 대 역전으로 이겼던 그날이잖아.”

매회 한 점씩을 주고받으며 역전에 역전으로 결국 9회 말까지 가서 승패가 판가름 난 경기였다.

“우리 쪽이 역전으로 이겼는데도 나는 자꾸만 그 시간 어딘가에서 연장전에 들어가 역전을 당하고 있을 것만 같았어.”

“지금 미주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아직도 그 렌즈가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만 같아.”

더블은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주머니를 뒤적여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사진액자 뒤에 매달려 있던 카메라 렌즈였다.

“아까 검색 해 봤는데 이건 일반 몰래 카메라와는 좀 달라.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건 아니고 직수입한 물건 같은데 CCTV용이라고 생각하면 돼. 움직임이 감지되면 연결 해 놓은 스마트 폰으로 알림이 와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카메라야. SD카드가 들어있지 않아서 녹화된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렌즈일 뿐이야.”

“실시간으로 아까 우리를 봤을 수도 있다는 말이네?”

“잘은 모르지만 특정한 누군가를 목적으로 달아놨겠지. 예를 들어 거기가 미주 집이라면 나 같은 사람이 달아놓을 수도 있겠지. 우리 아름다운 미주를 탐내는 또 어떤 놈이 미주 집을 들락거리는 건 아닌 가... 의심하면서....”

더블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더블의 말대로라면 한연수가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비서관이 물건을 챙겨 한연수에게 넘겨줄 때 왜 이것을 남겨놓았을까. 경찰이 곧 수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한연수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걸.... 갑자기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기억났다. 그녀는 짙은 눈 화장을 한데다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거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었다.
내 앞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을 툭 떨어뜨린 경우를 제외한다면 눈으로 그녀의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반미주 얼굴에 이제 좀 생기가 도는 것 같아. 눈동자가 이리저리 막 움직이기 시작했어.”

더블은 다시 내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눈동자 움직임으로 마음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 잖아. 호랑이나 치타 같은 맹수류는 흰자위 없이 눈동자만 진화된 거라더라구. 그들에게 눈동자의 움직임은 적에게 자신의 모든 걸 노출하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눈이 타원형인 우리 사람만이 눈동자에 사랑을 담을 수 있고 그리움을 담을 수 있거고 미움을 가질 수 있다..... 생태심리학교수였나? 특강 들었던 기억 나... ”

“아까보다 얼굴색이 좋아졌어. 이제 좀 마음이 놓여.”

더블의 오랜만의 외출은 의도대로 되진 않은 것 같았다. 더블은 호랑이 시집보낸 기념으로 밥을 산다고 했지만 분명 할 말이 있어 내게 연락을 한 것일 거였다. 결국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더블은 택시로 나를 바래주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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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어디야? 시간 되면 잠시 보자.’

쥬디의 문자였다.

‘집 앞 편의점.’

바로 벨이 울렸다.

“5분 후면 도착 하는데 볼 수 있지? 옥상공원으로 갈게.”

담배를 사려고 편의점 앞에서 택시를 세웠지만 쥬디가 온다는 바람에 맥주만 두 캔을 샀다. 지난 번 더블의 집에서 내년 치 담배 두 개비를 다 피웠기 때문에 2년 후의 것을 가불해서 필까 했던 거였는데....

내가 한 해에 두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블밖에 없었다. 캔을 따기도 전에 쥬디가 도착했다. 칼칼한 하얀 셔츠의 단추는 두 개쯤 풀려 있었고 타이의 매듭은 느슨하게 내려와 있었다.

쥬디가 술이 많이 취한 상태로 밤에 내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쥬디는 내가 앉아 있는 옥상의 벤치로 천천히 걸어왔다.

“오.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바바리 입었네!”

오렌지가 아니라 밝은 브라운이었는데 쥬디는 항상 그걸 주황색이라고 말했다.

“맥주? 좋지....”

쥬디는 받아놓고도 마실 생각이 없는지 그냥 들고 만 있었다. 옷매무새는 흐트러져 있었지만 옆에서 보니 그리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미주야... ”

“....응..”

“뭐...하나만... 물어도 되니?”

“ .... ”

“그냥... 술기운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솔직하게 말해 줄래?”

쥬디는 겸연쩍게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처음에 말이야. 같이 스윙댄스 배우던 때.. 너랑 호텔 갔던 날...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우리 호텔서 다시 나와서 또 술 마시고... 모처럼 즐거웠던 날... 날이 다 밝아서 집으로 돌아갔었지. 아주 즐겁게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이상하게 미주 너... 그 다음부터 나를 좀 멀리하더라...? 글쎄 모르겠어. 나는 결혼이란 걸 해봤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함께 밤을 보내고 나서 더 많이 그립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된 것 같았거든... 그리고.... 부부처럼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너는... 이상하게 선을 딱 긋는 거야. 전보다 문자도 줄고 통화도 안되는 시간들이 많고.... 기억나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다시 만나긴 했지만 너는 호텔은 안가려고 하더라고. 다시 우리가 호텔을 갈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지. 나는 말이야... 널 만나면서 그게 항상 의문이었어. 그런 네 마음의 변화... ”

쥬디는 자신이 맥주 캔을 들고 있다는 게 방금 생각난 듯 캔을 들어 벌컥벌컥 목으로 넘겼다.

“오늘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 그게.....”

쥬디는 한숨을 푹 내 쉬었다.

“그게.. 그게 말이야... 미주야.”

“ .... ”

쥬디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혹시... 장현수 때문이었니?”

쥬디는 진실을 파내기라도 할 것처럼 안경 너머 예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장현수... 에프 때문이 아니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땐 스윙댄스협회에서 우연히 쥬디를 다시 만 후 제법 시간이 흘러 사이가 꽤 깊어지던 때였다. 서로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호텔을 간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전 날 쥬디와 호텔에 갔었다는 걸 기억해내고 정말 난감했었다. 호텔에 갔다는 사실 외에는 기억이 완전 암흑이었다. 그 다음 기억은 거기서 나와 술을 마신 곳으로 바로 연결이 되었다. 술을 마시며 나는 웃고 떠들고 신이 났었다. 도대체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텔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이와의 사랑행위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가볍고 쉽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내게 실망하고 또 절망했다. 아무리 7분의 1이라고 하지만 거기엔 진지한 마음이 깊게 드리운 진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내 행위에 대해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정신이 담기지 않은, 행위만이 존재했다면 그건 단순한 욕망일 뿐이었다. 그 욕망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건 아버지를 빌미로 내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해버린 악랄한 행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나 자신에 너무나 실망했었다. 그래서 한걸음을 뒤로 물러섰을지도 몰랐다. 내가 또 다시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내가 내게 실망하게 될까봐.

다시 그와 호텔에 들게 된다면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정신적 상황이 될 때, 또한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설 때일 거라고 마음먹었었다.

“... 그래... 음.... 침묵이 대답이라.. 그래... 잘 알아 들었어. 잘 알았어....”

쥬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 선배 ...”

“.... ”

쥬디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거 아니야.... 그분 때문 아니야.... 전혀 별개의 문제야.”

“.... 아니야?”

“아니야...”

“그럼.... 왜였는지... 내게... 설명해 줘...”

쥬디는 자신의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 내게...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였어.... 가볍고 쉬웠던 나 자신에 대해서....”

쥬디가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 유치했지만 잘 한 것 같다. 그 질문....”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나도 오늘 좀 힘든 하루였어. 쉬고 싶어.”

쥬디와 1층으로 내려 와 인사를 하고 다시 승강기로 오르는데 쥬디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나 좀 재워 줄래?... 소파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갈게. 오늘은 같이 있고 싶어...”

대답도 하기 전에 쥬디는 승강기에 올라 타이를 풀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들어서는데 이상하게 현관센서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지난 번 도둑이 들어서 그런지 그 후론 집에 들어올 때 항상 긴장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나는 쥬디가 신발을 벗는 동안 얼른 거실로 올라와 불을 켰다.

내 집에 경보장치를 맡아서 해주겠다던 미영은 내일부터 작동이 된다고 오늘밤까지는 조심해야한다고 문자를 남겨놓았었다. 안전이야 하겠지만 매번 설정하고 해제하는 걸 생활 화 해야 하니 그것도 습관이 될 때 까진 아주 불편할 일이었다.

쥬디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는데 어디서 벨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프의 폴더폰에서 나는 벨소리였다. 아침에 가지고 나가려다 보니 방전이라 충전기에 꽂아 둔 것이었다.

그런데 벨소리가 침실에서 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분명 충전기는 침실 화장대 위에 있었다. 내가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서는데 갑자기 쥬디가 한 손으로 내 몸을 막으며 재빠르게 세면실 문고리를 잡았다. 동시에 누군가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쥬디의 발에 걸려 넘어진 그는 고등학생 될까 말까한 앳된 남학생이었다.

쥬디는 학생의 두 팔을 압박하며 일으켜 세웠다. 학생의 옷 주머니에선 여전히 벨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5. 엠, 월요일을 싫어하는 남자
#6. 어떤 고백
#7. 한 잎의 여자
#8. 당신은 어디 있나요?
#9. 그 여자 미주 -내 이름은 튜즈
#10. 이미 시작된 일
#11. 말할 수 없는 비밀
#12. 점점 깊은 곳으로
#13. 기억의 영속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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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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