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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포트리스(The Fortress) #7. 지인(知人)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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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은 쉽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부작용자들의 습격으로 집 열쇠를 차고에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진은 CCTV 앞에서 문 열어달라는 말을 손짓과 발짓으로 전했다. 아내 희경이 보고 있기를 바라면서.

CCTV에 손짓을 하자마자 반가운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고 원진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원진이 지친 몸으로 현관 앞에 있는 세면대에서 대충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서자, 현관 앞에 서 있던 희경이 조용히 원진을 포옹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오빠.”

아내의 한 마디에 원진은 울컥하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CCTV를 통해 원진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모양이었다. 희경이 드디어 자신의 진심을 알아줬다는 사실이 기뻤다. 원진은 말없이 희경을 더욱 세게 꼭 안아주었다. 고난 뒤에 행복이 있다는 말을 조금은 믿기로 했다.

그 후로 며칠간은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희경이 정원 가꾸는 일을 낙으로 삼아 장미에 물을 주고 다른 화초에 영양제를 주는 동안, 원진은 집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침입자들 때문에 부서진 철망을 보수했고 그들의 피로 더럽혀진 곳을 청소했다. CCTV의 전력선과 출력 단자 선을 돌아가며 점검하고 보수한 후에는 모니터 룸에 앉아 나름의 방식으로 차고 변경 설계를 시작했다. 불안한 차고의 형태를 개조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의 차고는 차고 문만 열리면 정원까지 다 보이는 구조였기에, 차고와 정원 사이에 벽을 세워서 마치 조선소의 도크(dock) 형태로 변경할 생각이었다. 그런 형태라면 차고가 털려도 정원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차고가 자연적으로 1차 방어선이 되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땐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장미는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정원에 비닐을 깔고 시멘트를 버무리는 원진에게 희경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원진의 공사 때문에 정원을 망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 마. 딱 여기 비닐 위만 어지럽힐 거야.”

마음 같아서는 차고 양쪽 끝에 H빔을 세우고 그 사이를 강판으로 막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기중기나 포클레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외부에서 부를 수도 없었다.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었지만 외부인들에게 집안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에 붉은 흙벽돌을 쌓아 벽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뒷마당에 쌓아둔 벽돌을 앞으로 나르고 모르타르 부대를 앞쪽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던 희경이 물었다.

“차고를 뒷마당에 두지 그랬어?”

원진은 픽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다. 안 그래도 후회하는 중이야.”

차고를 세울 때는 원진이 집과 담의 강도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였다. 차고 문이 이 집에서 가장 견고한 강판으로 되어 있었기에 정원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쪽으로 설계한 것이다. 아무리 튼튼한 방패라도 활짝 열려 있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던 희경이 입을 열었다.

“오빠, 선경이 기억나? 경 시스터즈 선경이.”

희경의 말에 원진은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희경이 말을 이었다.

“왜 예전에 집들이도 했었잖아.”

원진이 몰라서 대답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불안감 때문에 입이 열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응, 기억나지.”

원진은 의도적으로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 불안한 대화가 빨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길 빌었다. 하지만 희경은 집요하게 말을 계속했다.

“얼마 전부터 연락이 안 되더라.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원진은 희경의 친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원진에게는 서로 마주 보고 인사 한 번 한, 지인일 뿐이었으니까.

원진에게 있어 지인이란 존재는 굉장히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을 의미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서도,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눈 사이였다. 경조사로 치면 3만 원짜리들이었고 돈거래로 치면 한 푼도 꿔줄 생각이 없는 레벨의 사람들. 원진에겐 친분에도 레벨이 있었고 지인이란 존재들은 하위 레벨에 속하는 무리였다. 이런 원진의 기준에 관계없이 친절하게 마음을 쓰는 척해야 하는 경우가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아내 희경의 지인들이었다.

희경에게 친한 정도를 따져서 친밀도의 수위를 정할 수도 없었고, 원진의 기준으로는 지인이라는 타이틀도 멋쩍을 정도의 관계였기에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희경의 체면과 기분을 고려해서 그들을 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희경의 친구는 곧 자신의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원진이었지만, 그건 그냥 희경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원진이 살아온 세계에서 누군가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믿는 다는 것은 곧 멍청함을 의미했고, 멍청함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희경의 친구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원진은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고.
원진은 마지못해 희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요새 인터넷도 그렇고 휴대폰도 그렇고 상태가 불안정하잖아. 우리 점심은 뭘 먹을까?”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렸지만 희경의 표정으로 보아 여전히 친구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원진이 서둘러 다시 물었다.

“점심은 뭘 해먹을까?”
희경이 원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집들이했던 거 기억나?”

“그랬나?”

“계엄령 터지기 전에 부부동반으로 내 친구들 불러서 집들이했었잖아. 기억 안 나?”
기억력 좋은 원진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다. 희경의 친구 부부 두 쌍이 왔고, 요새와 같은 집을 막 완성한 원진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데리고 집 구석구석을 보여줬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을 시키는 강철 셔터부터 지하 3층에 이르는 지하 생활 공간을 보여줬을 때 그들은 진정 감탄하는 눈빛이었고 그만큼 원진의 기분도 좋아졌다.

“무슨 일 생기면 이리로 와도 돼요?”

아내 희경이 늘 경 시스터즈라고 부르며 챙겼던 선경의 말이었고, 원진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인사치레였으니까.

“그럼요! 언제든지!”

그게 인사치레라는 게 뭔지 알만한 나이였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진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말 기억 안 나?”

재차 독촉하듯 묻는 희경의 질문에 원진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랬던 것도 같고.”

원진을 빤히 바라보던 희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오늘 참 이상하네.”

희경의 말에 내심 놀란 원진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일을 하며 되물었다.

“뭐가?”

“내가 머리핀을 어디에 뒀는지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내 친구 부분만 기억을 못하네?”

“그, 그런가?”

원진은 모르타르를 버무리는 일을 하면서도 희경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을 더욱 열심히 하는 척했지만 희경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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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이 맘에 안 들어?”
버무려진 모르타르 한가운데 삽을 꽂아둔 원진은 벽돌을 쌓을 곳을 낚싯줄로 표시를 하며 대꾸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친구를 내가 왜 싫어해.”

“기분 탓이겠지?”
원진은 나오지도 않는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고는 낚싯줄을 따라 모르타르를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원진이 물었다.

“그런데 친구 얘기는 왜? 그 친구한테 무슨 일 있어?”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잖아. 내 얘기 안 듣고 있구나?”

원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희경을 바라보았다. 안 들은 게 아니라 회피할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놓친 것이다. 벽돌을 들던 원진은 전기가 통하는 듯한 어깨 통증에 벽돌을 떨어뜨렸다. 깜짝 놀란 희경이 단숨에 달려와 원진을 부축하며 물었다.

“어제 다친 거야? 어디 다쳤어?”

“어깨. 별거 아니야. 찜질 좀 하면 돼.”

희경은 원진의 소매를 걷어 어깨를 살폈다. 검붉은 멍에 찰과상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세상에… 이게 별거 아니야? 이리 와.”

원진은 희경이 이끄는 대로 테라스에 앉았고 희경은 집으로 뛰어들어갔다가 구급상자를 들고 나왔다. 에어 파스부터 집어 드는 희경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원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파, 파스는 찰과상 입은 곳에 하면… 아악!”

희경이 에어 파스를 뿌리는 순간 아스팔트에 쓸린 상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머, 미안해! 미안해!”

원진은 이를 악물고도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아파서 식은땀이 등골을 따라 흘러내릴 정도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그의 목은 진작 부러졌을 것이다. 사과를 하면서도 소독약을 집어 드는 희경의 손에서 약을 부드럽게 빼앗으며 말했다.

“내가 할 게, 희경아. 혼자 할 수 있어.”

“그래도 내가 해주는 게 나을 텐데.”

“이따 밴드 붙일 때만 좀 도와주면 될 것 같아.”

원진의 인생에서 이런 타박상과 찰과상은 상처 축에도 들지 않았다. 갈비뼈는 수시로 부러졌다가 붙어서 더 단단해졌고, 쇄골 또한 꽤 다양한 방식으로 부러져서 지금은 쇠를 박아 영구적으로 고정했다. 그런 원진도 겁이 나는 건 칼을 맞아서 얻는 상처였다. 찌르거나 베이면 불길이 지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기에 칼을 들고 있는 상대를 보면 예민해지곤 했다.
상처 치료를 하는 원진을 말없이 지켜보던 희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저 톤으로 말하는 건 불길한 징조였다. 상의도 없이 남에게 천만 원을 꿔줄 때도 저런 톤으로 불렀다. 물론 그 천만 원은 받을 수가 없었다. 채무자가 신약 부작용으로 사살당했으니까.
원진은 애써 딴청을 피웠지만 희경은 에누리 없이 말을 이었다.

“선경이 연락 끊어지기 전에 문자메시지 하나 받았어.”
희경은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밀었고, 보고 싶지 않은 원진의 마음과 달리 본능적으로 시선이 먼저 갔다.

[ 희경아, 너희 집으로 가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

원진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눈을 감았다. 이 집을 지은 이후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새에 외부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틈이 생기는 법이다. 목숨을 내줘도 아깝지 않은 희경의 부탁이라도 이건 절대로 허락할 수 없었다.
한숨만 내쉬고 있는 원진을 희경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안 돼?”

새끼 고양이 같은 희경의 얼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허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시선을 피했지만, 희경은 시선을 좇아 얼굴을 마주했다. 귀여운 희경의 모습에 원진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자.”

“진짜?”

“오케이 한 거 아니야. 생각해 보자고.”

“알겠어, 알겠어.”

원진은 왠지 신나 보이는 희경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기에 벽 쌓는 일에 더욱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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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중앙대학교 졸업. IT 회사 입사, 경영기획, 전략기획, 사업제휴 등의 다양한 직무 경험.
1999년 포털사이트에 <왼팔> 연재. 2001년 출간. 이후 소시오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스릴러 <Business is business>(2010), <유령 리스트>(2015)로 액션물 출간.

2001.08 「왼팔」
2003.03 「왼팔II」
2005.07 「적경」
2008.06 「피해의 방정식」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
2010.01 「위험한 오해」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II)
2010.10 「Business is business」
2013.11 「사이비」 (원작 : 연상호)
2014.03 「조난자들」 (원작 : 노영석)
2015.08 「유령 리스트」
2015.10 「살인의 기원」 2015 부산영화제 북투 필름 피칭작 선정
2016.04 「왼팔 rebuild」
2016.04 「블랙러시안」, 「증오」, 「복수의 미학」 (맨 헌터 태성 시리즈)
2016.05 「십이 죄」
2016.07 「세일즈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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