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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괄타결로 급한 불 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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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간에 현안문제이던 담배시장개방과 미 통상법301조 관련 보험·지적소유권문제가 일괄타결형식으로 최종매듭이 지어졌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작은 것은 주고 큰 것을 얻기 위해」타결을 본 것이라고 우리정부측은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최대수출시장인 미국이라는 시장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는「안결」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갈수록 거세어지는 미 의회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깨닫는데 둔감했고, 일이 터지고 보니 변변한 로비이스트 한 명 없었다.
국내 출판업계는 번역료·복제료의 부담 없이 외국서적을 번역·복제하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무조건 국내 산업보호를 위해 개방의 문을 닫아걸고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보험이 바로 그 같은 예다. 보험은 지난 79년에도 301조 제소를 받아 「금융 풀 참여」라는 타결을 본적이 있는데 이후 실질적으로 타결내용이 이행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 9월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브라질·일본·EC등을 대상으로 301조 발동의 결정을 내릴 때 한국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이밖에 우리가 공연히 사서 고생하는 문제도 있다.
이번 301조 타결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관광 호텔용 쇠고기 수입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소 파동」만 없었더라도 국내정치상황으로 인한 수입중단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공연히 미국의 비위를 또 한번 긁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선진한국」을 지나치게 홍보하다가 뒤늦게 목소리를 낮추었던 것도 자승자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경제대국이 이럴 수 있느냐」「우리가 어째 제2의 일본이냐」「미국의 무역적자가 우리의 쇠고기 수입중단 때문이냐」「풀어봐야 덕보는 건 일본이다」「우리의 방위비 부담이 얼마냐」는 등의 우리측 논리는「자동차까지 수출하는 나라가 외국담배 소지자를 잡아 가두느냐」는 식의 미국 측 반박 앞에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어쨌든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우리는 미국의 301조 발동에 직면했고 한편으로는 공부를 해가며, 또 한편으로는 협상을 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타결내용을 놓고 보면 우리는「준 것」뿐이다. 정부는 미국의 수출시장을 지키는 것이「받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고있다.
우리가 자위할 수 있는 것은 당초의 미국 측 요구대로 다 들어준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이번에 미국 측과 일괄타결을 봄으로써 어쩌면 떨어질지 모르는 불똥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어디까지나「가정」에 불과하지만 일괄타결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 미국이 301조를 실제로 발동, 예컨대 한국산 자동차를 쿼터로 묶는다거나 섬유규제법을 통과시켜 연간 약6억 달러의 손해를 보게 한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협상결과를 분야별로 평가해보면 보험은 일단 미국의 요구를 거의 다 받아들인 셈이다. 보험사의 추가진출시기를 조금 늦추었고 방위산업체 등의 화보 풀은 개방 않기로 한 것만이 우리의 주장이 먹혀들었다.
저작권 및 소프트웨어 분야도 원칙적인 것은 대개 미국 국측 주장이 관철되었고 다만 ▲소프트웨어를 저작권법에 넣지 않고 별도입법으로 보호키로 한 것 ▲번역·개작·소프트웨어를 소급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킨 것 등은 우리측의 주장대로 결론이 난 것이다.
또 물질특허분야는 미국 측이 제시한 원칙이 모두 받아들여진 가운데 구체적인 시기·방법 등만이 절충되었을 뿐이다.
301조 협상과는 별개의 것이었는데도 이번에 함께 포함시켜 수입개방을 앞당긴 것이 바로 담배다.
담배의 조기개방은 흔히 알려진 대로 쇠고기 등의 농산물수입개방 대신의「교환조건」이라기보다 어차피 내년 초에는 개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선거를 앞두고 트느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개방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좋겠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특히 담배의 경우 국내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단안을 내렸는데 잘잘못은 지나고 보면 판정이 날것이다.
이번 협상결과로 당장의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이 얼마나 되느냐를 따져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번역료·복제료 부담은 연간 36억∼44억 원이며, 물질특허 사용료가 오는 95년에는 연간 약 1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결과도 있기는 하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우리측의 부담이다.
단적인 보기로 보험시장의 개방요구는 미국 측이 한국의 보험시장 자체를 노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보험사를 통한 한국자본시장·제2금융권에의 참여가 주된 목적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이번의 한미통상협상결과는 우리에게 충격적이고 타율적인「국제화시대」를 열게 했다는 점에서 기록에 남길만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타율적인 개방을 우리경제와 문화의 체질개선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제2, 제3의 통상마찰을 미리 막아야하며, 기업들도 외국기업들과 당당히 맞설 채비를 차려야 한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제는 막대한 기술개발투자로 개발한 신약을 다른 제약회사가 제법만 조금 바꾸어 바로 시장에 내 놓을 수 없게 되었고, 공들여 번역해낸 책을 다른 출판사가 뒤따라 번역할 수도 없게 되었다. 기왕 국내시장을 터놓았다고 해도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데는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제 외제담배를 합법적으로 피울 수 있게되었다고 해서 양담배만 찾는 사람이 늘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요컨대 정부·기업·가정 모두가「개방」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물질특허를 도입하자 기술개발투자가 부쩍 늘어나 오히려 약값이 떨어졌다는 일본의 선례는 좋은 교훈이기도하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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