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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먼저다] 노사문제 해결돼야 일자리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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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관성 없는 정책과 과도한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잦은 분규도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다. 또 기업은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들이 밝히는 해법이다. 중앙일보는 '일자리가 먼저다' 주제의 1부 시리즈를 끝내며 김광두 서강대 교수의 사회로 김효성 대한상의 부회장과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김광두 교수=4학년 졸업반 학생들 얼굴 보기가 미안할 때가 많다. 취직하지 못한 학생이 많아서다. 평균 실업률은 3.3%지만 청년 실업률은 7~8%로 두배가 넘는다. 특히 대졸자의 경우 과거에 비해 대기업.은행.외국기업 등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1997~2001년 사이에만 이런 일자리가 30만개 정도 줄었다. 그래서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 하지만 실업 해소를 위해 단기적으로 내놓는 일자리 대책은 무리수가 나올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내 기업 투자와 외국 투자가 늘어야 하는데 현상은 정반대다. 왜 그런가. 정부 정책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김효성 부회장=국내로 들어오려는 외국 기업은 한국의 장점을 높이 사고 있다. 기술력이 아시아의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좋고 인력 수준도 우수하다. 문제는 노사분규다. 한번 터지면 예측할 수가 없다. 현대자동차 파업 2주 만에 차량 8만대를 생산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원덕 원장=국내 기업이 나가고 외국 기업이 발길을 끊는 데에는 노사관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국정원이나 경찰을 동원하는 식으로는 노사관계가 안정될 수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노사정이 한발씩 양보하는 새로운 모델을 세워야 한다.

▶金교수=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것은 우리 기업이 투자를 잘 안 하는 것인데,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노사관계다. 현 정부정책은 원칙을 제시하지 못한 채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노사는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취한다.

▶金부회장=노조 지도자들의 목적이 다른데 있는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규가 장기화되고 심한 사업장일수록 다른 곳보다 임금수준이 높다. 근로조건 개선보다 정치적 이슈가 앞선다.

▶金교수=결국 일자리 부족은 수요.공급의 관계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 정책.노사관계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노조의 이익과 근로자의 이익이 일치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일부 노조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노동자가 아니라 노조 지도자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도 심각하다. 현 정부의 정책은 '친노(親勞)'가 아니라 '반노(反勞)'다. 근로자 불만이 임금에만 있지 않다. 노동정책만 보면 '친노'라 할 수 있지만 거시정책은 부동산 가격만 올려 놓아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李원장=사용자도 변해야 한다. 기업부터 먼저 변해야 노조도 변하지 않겠는가. '경영환경이 안 좋다'며 자꾸 외국으로 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선진국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의무)'가 중시되고 있다.

▶金교수=우리나라에서는 강성노조가 결국 성공한다. 정치집단이 자기들 이익 때문에 분쟁을 빨리 끝내려고 개입하고, 그러다 보니 기업에 요구조건을 들어주라 요구하고, 이러한 것이 반복된다. '학습효과'다. 불투명한 오너시스템 등 기업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李원장=원천적으로 강성노조를 연성노조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토양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선도하는 것은 경영자다. 과거 경험을 보건대 고용계약을 중시하지 않고 갑자기 아무런 대책 없이 구조조정하는 기업에서는 반드시 강성노조가 나오게 돼 있다.

▶金부회장=우리나라 기업치고 약점 없는 기업이 어디 있는가. 결국에는 손을 든다. 중재자가 조정하지 못하고 한쪽 입장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중재자 역할 회복이 중요한 때다.

▶李원장=근로자의 열정과 창의력을 국가발전에 이용하기 위한 파트너로서 끌어들여야 한다. 결국 기업에는 '노동 유연성'을, 근로자에게는 '고용 안정성'을 동시에 줘야 한다.

▶金교수=정부 정책의 초점이 흐리다.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과거 권위주의에서 정상적으로 가는 과도기라는 지적은 맞다. 그런데 전환기가 너무 길다. 87년부터 16년간이다. 이는 이익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이 결여된 때문이다. 국가를 이끄는 정치집단은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을 제시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규범.법이 자꾸 뒤로 밀린다. 우리의 노조 조직률은 전체의 12%다. 이들이 과도하게 나섬으로써 그들의 근로조건은 좋아지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더 어렵다.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오히려 실업은 더 늘어난다. 12%의 노조가 근로자 모두를 위한 조직이냐, 자기들만을 위한 조직이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金부회장=12%의 노조를 위해 88%가 희생하는 꼴이 되어선 곤란하다. 지금 일고 있는 비정규직 논란도 문제다. 기업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채용.해고가 자유롭고 적은 임금을 지불해도 되는 비정규직을 늘리려 하게 돼 있다. 그래서 결국은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고 요건을 유연하게 하는 고용유연성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되게 마련이다.

▶李원장=앞으로는 국민경제 전체의 발전에 일조하는 노동운동이 돼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운동이 돼야 한다. 선진국들이 그렇다. 유연한 노사관계 속에 평생 일자리가 보장되는 방식이 정착돼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이를 보완하는 사회안전망도 갖춰야 한다.

▶金교수=정부는 노사관계 등 경제정책의 로드맵을 조만간 발표할 때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내용을 내놓길 바란다. 민간 창의성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창의성이며 경쟁력이 강화되면 기업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金부회장=정부의 신성장 산업 논의가 한창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제조업체들이 견딜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 주고 기업인에게 일할 의욕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노동부는 노조 문제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인력개발에 더 신경을 써 산업인력 훈련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李원장=신성장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함께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사회적 일자리는 지방자치단체 등을 중심으로 환경보전.노약자 보호 등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자리다. 선진국의 경우 이런 사회적 일자리가 전체 취업자의 20~30%다. 우린 통계도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또 요즘 네덜란드 모델이 논쟁이 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노사 대타협이다. 젊은이들이 보람과 비전을 갖도록 중소기업의 작업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金교수=국제경쟁 속에서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 규제를 계속하면 안된다. 불황이면 기업 규제를 줄이고 호황이면 강화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개혁의 목적이 기업을 살리면서 행동을 똑바로 하라는 것이라면 기업을 죽여서는 안된다.

정리=정선구.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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