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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상<시인>"게 너무 잡아먹었다"『게』그림으로 속죄|화폭마다 애절한 사연 깃들어|『이중섭전』중앙일보 호암갤러리서 24일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이중섭 30주기 추모전을 보고 첫째로 느끼는 것은 그가 1·4후퇴로 남한땅에 떨어져 죽기까지 불과 6년이란 짧은 세월속에서 실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유화·수채화·스케치·그로키·데생·에스키스·은지화등 이번 전시된 것만도 2백50여점이나 되고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세상에 공개된 작품도 또한 그 정도의 수효가 되리라고 보는데, 중섭은 그렇듯 호구나 거처의 마련도 없으면서 놀랍게도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려 남겼다.
판자집 골방,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여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노동을 하다 쉬는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또는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와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제주도·충무·진주·대구·서울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중섭의 그 타고난 천재적 자질과 그의 심신의 강인성이 아니었다면 그 처참한 곤경속에서 저렇듯 숱한 그림을 그려 남겨서 이제 현대미술가, 아니 전체 예술가중에서도 가장 대중에 사랑받는 예술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둘째로 중섭의 그림을 보면서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은 그림의 모티브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그 애절한 사연이다. 특히 만년의 작품속에는 생이별한 가족들에게 향한 사랑과 그리움과 외로움이 담겨있고 스며있어 그 정황을 너무 잘 아는 나같은 사람으론 예술적 감상보다 눈물이 앞서는 것이었다.
한편 부인 남덕여사와 연애시절의 엽서그림에 나타나있는 중섭의 그 불타는 사랑의 영어들은 또한 그것이 이탈애수를 수반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감각적인 도취나 황홀을 넘은 정신적 비경에 들게 한다.
이번 전시회 개막때 참석한 남덕여사는 바다『게』그림앞에서 나에게『제주도 시절엔 어찌나 먹을 것이 달리(부족)던지 매일, 바닷가에 나가 게나 조개를 잡아다 먹었는데 주인(중섭)은 그것이 몹쓸 짓을 하는것 같아 그 게들의 넋을 달래기위해 게를 그린다고 말하곤 했었지요』라고 술회했다.
나의 가족과 중섭자신을 함께 그린『K시인의 가족』도 그가 1954년부터 1년반가량 대구에 있었던 나에게 와있을 때 마침 내가 왜관 낙동강변에다 자그마한 집을 장만하고 피난중 남의 곁방살이를 면하면서 아이들에게 세발자전거 하나를 사다 주던날, 그가 그것을 스케치한 것이다.「가족사진」이라며 준 이 그림은 나의 가족단란을 바라보는 그의 멀뚱한 표정이, 그의 축복이랄까, 부러움이랄까, 외로움이랄까, 그날의 그의 표정이 바로 오늘날에도 나를 향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져 스스로 놀라곤 한다.
저러한 중섭의 그림을 어떤 이들은 너무나 그림에 이야기가 많다고, 또는 문학적 요소가 짙다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없지않다. 그러나 그의 저러한 미적 상념이나 감동자체가 저렇듯 순결하고 진실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할뿐 아니라 특히 그것이 형상화에 있어서 아무런 결함을 갖고 있지 않으니, 즉 그림이 되고 있으니 시비할바가 못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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