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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심은 비타민나무에 ‘칭기즈칸 열매’ 주렁주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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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11면

몽골 바양노르에 위치한 푸른아시아 조림지에서 주민들이 차차르칸 나무에 열린 주황색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2007년 조림을 시작하기 전 이곳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신훈 ㈜비타민나무 대표와 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이 아르갈란트 숨버 군수에게 씨앗을 전달하고 있다(왼쪽부터).

사막화와 황사를 방지하기 위해 몽골에 나무를 심어온 국내 시민단체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몽골에서 조림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민단체 푸른아시아가 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방풍림에 함께 심었던 차차르칸 나무(일명 비타민나무)에서 ‘칭기즈칸의 열매’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여름에도 수확에 들어갔다. 열매는 소득으로 이어진다. 월급 받고 나무를 기르던 주민들이 스스로 나무를 심고 가꿔야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몇몇 조림지에서 거둔 성과는 현지 주민들의 기대 속에 몽골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앙SUNDAY 취재팀은 지난달 30일부터 엿새 일정으로 국내 차차르칸 전문가들과 함께 몽골 내 푸른아시아 조림지 4곳을 둘러봤다.

1 올가을 첫 조림에 들어갈 아르갈란트 지역에서 주민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2 에르덴 조림지에서 수확한 차차르칸 열매.

비닐하우스에선 수박·토마토까지 수확지난 2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00㎞ 떨어진 볼강 아이막의 바양노르 솜의 푸른아시아 조림지. 아이막은 우리의 도(道), 솜은 우리의 군(郡)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다. 축구장 면적의 170배(122㏊)에 해당하는 조림지에는 포플러와 느릅나무·버드나무·차차르칸 나무 15만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조림지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차차르칸 나무 열매를 따서 양동이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키가 1.5m 안팎인 나무 가지마다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의 타원형 주황색 열매가 빼곡히 열려 있었다.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새콤한 맛이 혀를 강하게 자극했다. 비타민C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차차르칸은 히말라야와 고비사막, 네이멍구 고원, 중동 사막 지역 등에서 자라는 가시나무과(科) 식물이다. 열매는 영문으로 시벅손베리(seabuck-thorn-berry) 혹은 ‘칭기즈칸의 열매’로 불린다. 과거부터 몽골인들은 감기 등을 다스릴 때 끓는 물에 열매 가루를 타 마셔왔다. 국내에서도 10여 년 전 재배되기 시작해 과즙은 음료로 시판되고 있고 과육 기름과 씨앗 기름은 화장품·샴푸에 활용되고 있다. 잎과 줄기는 차(茶) 재료로 쓰인다. 비타민과 미네랄·아미노산·오메가 지방산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푸른아시아와 인천시 등이 함께 운영하는 바양노르 조림지는 4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바양노르 읍내 주거지역을 4개의 숲이 둘러싸고 보호하는 형국이다.


제1구역은 2007년 가장 먼저 조림을 시작한 곳이다. 토질이 더 좋은 인근 2구역은 2009년 조림을 시작했지만 차차르칸 나무의 키가 2m 안팎까지 자랐다.


현지에 상주하고 있는 푸른아시아 단원 유진(25·여)씨는 “지난해 이곳에서 800㎏의 차차르칸 열매를 수확했는데 올해는 더 많은 1t 정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이곳에서 나무를 가꾸고 있는 주민 변바(58)는 “처음에 나무를 심기 시작할 때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처럼 나무가 잘 자라 너무 기쁘다. 차차르칸 열매까지 팔아 돈을 벌 수 있어 더 열심히 나무를 기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양과 염소 등 가축 700여 마리를 기르던 유목민이었다. 2003년 여름 가뭄과 겨울 폭설로 가축들이 굶어 죽자 유목생활을 접었다. 환경난민 신세가 된 변바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2007년 푸른아시아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나무를 길렀다.


자신보다 키가 더 자란 나무들 곁에 선 변바는 ”풀 한 포기 없던 곳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은 뒤 양동이로 일일이 물을 주던 때가 생각난다”며 감개무량해했다. 이곳 바양노르 조림지 한쪽에는 비닐하우스도 4동이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이 수박·오이·피망·토마토까지 기르고 있었다. 노지에는 감자·당근·양파도 재배한다. 주민들은 야채를 수퍼마켓에 판매하기도 하고 오이김치를 담가 에코투어를 오는 한국 사람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앞서 취재팀은 지난달 31일 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75㎞ 떨어진 투브 아이막의 에르덴 솜에 있는 조림지도 찾았다. 한국 산림청과 경기도 수원시가 후원하는 116㏊ 면적의 조림지엔 포플러·비술나무 등 12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2010년 심었던 차차르칸 나무 5만 그루도 1m 안팎의 크기로 자랐고 주황색 열매도 촘촘히 달려 있었다.


푸른아시아 단원 박소현(23·여)씨는 “전체 26명의 주민이 돌아가면서 나무를 돌보고 있다”며 “주민 5~6명이 참가해 1인당 하루 5~6㎏씩 차차르칸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이곳에서 모두 1t 정도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전망이다.


판매 수익금 주민공동기금으로 활용주민 빈바자블(57)은 “열매를 수확해 번 돈은 이곳 주민들의 공동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차차르칸 열매는 ㎏당 몽골 화폐로 5000투그릭, 한국 돈으로 약 2500원에 거래된다.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한승재 선임연구원은 “조림사업을 하면서 방풍림과 함께 심는 유실수는 주민 소득원으로서 경제적·사회적 자립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취재에 동행한 국내 전문가들은 주민과 푸른아시아 관계자들에게 차차르칸 나무 관리와 열매 수확 방법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비타민나무의 강신훈 대표는 “현재 몽골에서 재배되고 있는 차차르칸 나무는 남쪽 중국의 네이멍구 나무와는 달리 대부분이 추위에 강한 러시아 계통”이라며 “사막 조건에 잘 자라고 영양분도 풍부한 품종을 골라 널리 보급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2005년 중국 네이멍구에서 차차르칸 씨앗을 처음 국내로 들여와 재배에 성공했다. 그는 “수확한 열매를 냉동창고에 보관했다가 시장에 내놓으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원도 농업기술원의 정옥순 전문위원은 “매년 새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는 한국과는 달리 몽골은 성장이 느린 사막 지역이라 2년생 가지에서 열매가 열린다”며 “구획을 나눠 일부는 가지를 잘라 열매를 훑어내는 방식으로 수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림사업과 주민 소득 증대 사업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자 인근 지역에서도 푸른아시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80㎞ 떨어진 투브 아이막의 아르갈란트 솜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르갈란트 주민들은 올해 초 바양노르 지역을 둘러보고는 조림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푸른아시아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아르갈란트에서 100㏊의 조림지를 확보했고 올가을에는 먼저 20㏊에 나무 2만 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생명의 토지상’ 수상지난 1일 취재팀이 아르갈란트 조림지를 찾았을 때 이미 나무를 심기 위해 1만6000개의 구덩이를 파 놓은 상태였다. 우리의 군수에 해당하는 숨버 세르겔렌 솜장은 “지역 내 보건소와 학교 등 관계자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푸른아시아의 조림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곳 아르갈란트는 남쪽으로부터 바람을 타고 모래가 밀려오는 지역이다. 사막화의 최전선인 셈이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은 “지금까지는 사막화가 이미 진행된 곳에서 조림을 했는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는 사막화 경계지역을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며 “이곳 주민들이 성공 사례를 이미 접한 상황이라서 성과도 훨씬 빨리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9년이 걸린 바양노르의 경우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2년, 기술을 터득하는 데 3~4년 걸렸다. 이런 시간을 최소화한다면 3~4년 안에 소득을 올리고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민 대표인 바아갈마(56·여) 팀장도 “3년 안에 숲을 가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주민들과 함께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최근 황사가 심해져 살기가 힘들었는데 황사 피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몽골은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가 심각하다. 몽골 환경부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황사가 연간 5회 정도 발생했는데 현재는 연간 30회 이상 발생하고 있다. 몽골 국토의 80%는 이미 어느 정도 사막화가 진행된 상태다. 사막화가 심각한 단계에 이른 지역이 2000년에는 전체 국토면적의 17%에 해당됐지만 2010년에는 30%로 늘었다. 2010년 몽골 정부 조사에 따르면 호수 1166개, 강 877개, 우물 2277개가 말라붙었다.


취재팀이 방문한 바양노르는 지명이 ’호수(노르)가 많다(바양)’는 뜻이다. 한때 15개 호수가 있었던 지역이다. 하지만 90년대에 9개로 줄었고 현재는 제일 큰 호수 ‘톰노르’ 한 곳만 남았다. 푸른아시아 유진 단원은 “마지막 남은 호수도 몇 년 사이에 크기가 축구장 3~4개 크기로 줄어 이제는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라고 말했다. 급속한 사막화는 기후변화 탓도 있지만 식물 뿌리까지 파 먹는 염소 사육 같은 과도한 목축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푸른아시아는 2001년 몽골에 진출했다. 다양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이제 본격적인 성과를 얻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수 사례로 꼽히고 있다. 푸른아시아는 2014년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주는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바양노르(몽골)=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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