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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이 99%인 희귀 은하 ‘드래건플라이44’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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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7면

슬로안 디지털 서베이가 관측한 희미한 드래건플라이(Dragonfly)44 (왼쪽). 제미니 망원경이 정밀 관측한 드래건플라이44의 이미지 (오른쪽).

지난 8월 25일 미국 예일대의 피터 반 도쿰은 암흑물질이 99% 이상을 차지하는 희귀한 은하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했다. 슬로안 디지털 서베이 관측 자료 중에서는 은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아주 희미한 이미지가 있었다(왼쪽 사진). 코마 은하단 주변에서 발견된 이 희미한 이미지 ‘드래건플라이(Dragonfly·잠자리)44’가 은하라고 생각한 반 도쿰은 해상도가 좋은 제미니 망원경으로 더 선명한 상을 관측한다.


일반적으로 질량이 큰 별이 더 밝게 빛난다. 마찬가지로 질량이 큰 은하가 더 선명하게 보여야 한다. 큰 질량을 가진 것으로 예상되는 드래건플라이44가 그림에서처럼 이렇게 희미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 도쿰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한다.


큰 질량 가진 은하가 희미해 보이는 이유는?세상의 첫 컴퓨터가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진공관으로 가득 채워진 30t의 에니악이다. 엘런 튜링은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첫 컴퓨터는 그가 1943년에 제작한 콜로서스이다.


현대 컴퓨터의 전형은 폰 노이만이 고안한 임시저장장치(RAM)를 장착한 연산기라고 할 수 있다. 엘런 튜링의 컴퓨터에서는 이러한 세련된 정보처리 능력을 구현하고 있지 않았지만, 테이프에 기록된 천공 정보를 이용한 연산 방식은 원리적으로는 오늘날의 고성능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개봉된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앨런 튜링이 제작했던 콜로서스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실제로 연산을 하지 못하는 영화 속의 소도구였겠지만, 전설로만 들었던 앨런 튜링의 입력 테이프들이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튜링은 정보처리에 사용되는 테이프가 무한하다면, 세상의 현상들을 모두 디지털 연산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이론적인 기계 A-머신(Machine)을 그가 첫 컴퓨터를 제작하기 10년 전에 이미 제안한다. 튜링이 콜로서스를 이용해서 독일의 이니그마를 해독하지 못했을 경우, 역사학자들은 두 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독일이 최소한 5년여 정도 더 버텼을 것이다. 혹은 독일이 영국을 점령했을지도 모른다. 튜링은 진정한 의미의 전쟁 영웅이었지만, 콜로서스와의 인연은 전쟁과 함께 차갑게 종료된다.


영국 MI6의 지원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거대한 컴퓨터는 아니었지만, 외로운 튜링과 체스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또 다른 A-머신 정도는 집에 설치할 수 있었다. 사회와 단절되어 A-머신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튜링의 마음속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기계의 생각과 나라는 인간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 집에 설치된 작은 기계가 아닌 무한에 가까운 테이프를 구동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인간의 생각을 기계로 연산해 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튜링에 의해서 인공지능(AI)의 초기 모형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까지 완성하고 튜링의 삶은 마감된다. 난 튜링이 조금 더 세상에 남아 있었다면, 같은 원리를 우주에도 적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관측의 힘에 의해서든 혹은 이론적인 유추에 의해서든 우주의 초기 조건에 접근할 수 있다면, 튜링의 기계는 우주의 연산을 디지털로 구현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튜링의 실험에서는 컴퓨터가 대답을 하고 있는 건지, 혹은 역할을 부여 받은 인간이 대답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컴퓨터의 디지털 연산에 의한 반응과, 인간이 만들어 낸 반응 사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이 구현한 우주와, 내 컴퓨터에서 제작된 우주가 달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 도쿰이 암흑은하의 질량을 관측하는 데 사용한 망원경.

암흑물질은 우주서 무거운 지역 만들어우주 초기에 빅뱅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급팽창에 의해서 우주거대구조의 씨앗이 생겨났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 컴퓨터 안에 우주처럼 큰 가상 공간을 만들어 놓고, 주어진 초기 조건을 만족할 수 있도록 입자들을 뿌려 놓는다. 공간 전체에 밀도가 균일하도록 뿌리는 것이 아니고, 우주 초기 급팽창이 만들어 놓은 미세한 비균질도와 같아지도록, 어떤 곳에는 조금 많이, 그리고 다른 곳에는 조금 적게 뿌려 놓는다. 컴퓨터 안에 입자 사이의 중력이 작용할 수 있도록 코드를 넣어 두고, 엔터 키를 치면 내 책상 위에서 새로운 우주가 진화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성된 가상우주를 N-바디 시뮬레이션(body simulation)이라고 부른다.


이 연산에 사용하는 입자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눈에 보이는 바리온이라는 입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발견된 적은 없지만 알려진 입자의 6배 정도 더 많이 존재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암흑물질이다. 이 암흑물질들은 텅 빈 우주 공간에 다른 곳보다 무거운 지역들을 만들어 내고, 바리온은 그 중심으로 빨려들어가 밝게 빛나는 은하를 만들어 내게 된다.


시뮬레이션을 제작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는 암흑물질을 가지고 연산하는 것이 더 쉽다. 그 이유는 암흑물질 사이에는 중력 이외에 전자기력 등의 복잡한 물리적 상호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뉴튼의 중력법칙만 입력해 두어도, 컴퓨터는 정확하게 암흑물질 우주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바리온의 경우는 입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복잡하고,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여러 가지 천문현상들의 피드백들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만일 천문학이 좀 더 발전하여, 바리온의 비선형 현상들도 모두 알려지게 되면 어두운 암흑물질 헤일로 중심부에 더 정확하게 은하도 생성할 수가 있고, 심지어는 이 은하들 내부에서 별들로 탄생시킬 수가 있게 된다.


우주를 디지털로 재현하려는 꿈 이루어질까그런데 이 가상우주에서는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난다. 가상우주에서는 수백 혹은 수천 개의 은하들이 탄생하는 고밀도 지역도 있지만, 실제 관측에서는 해당 고밀도 지역에서 고작 수십 개의 은하들만이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암흑물질에 대한 이론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디지털 우주에 대한 신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과연 인간이 우주를 디지털로 재현하고자 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번에 반 도쿰이 발견한 어두운 은하는 이 디지털 우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반 도쿰은 제미니 이미지 관측을 통해서 드래건플라이44의 보다 정밀한 상을 얻은 후에, 이 은하의 질량관측을 시도한다. 은하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눈에 보이는 바리온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일 이 은하의 질량도 측정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의 함유량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드래건플라이44에 아주 정밀한 분광 관측을 시도한다.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은하의 별들이 평균속도가 대략 초속 50㎞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지 관측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은하의 질량보다 훨씬 더 큰 물질들이 있을 때 가능한 평균속도다. 반 도쿰은 이 간극을 메우고 있는 물질이 암흑물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이 특이한 은하 내부에 암흑물질이 바리온보다 99배 많을 때만이 가능하다. 우주 평균인 6배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를 알 수가 있게 된다. 은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초신성이 폭발한다든지, 혹은 다른 알려지지 않은 천문현상에 의해서 은하 내부의 바리온들이 모두 은하 밖으로 유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암흑물질 은하 관측이 왜 중요한 것일까? 이 우주공간에 드래건플라이44와 같은 은하들이 다수 존재한다면, 가상우주공간에서 생성된 그 수많은 은하들이 실제 우주에서는 왜 보이지 않는지 이유가 설명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은하 내부의 바리온들의 유출이 심해서 단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원경으로는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온 콜로서스 그림.

튜링이 컴퓨터의 가상공간에서 세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지 70여 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은하의 발견처럼, 이제는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컴퓨터가 제공하고 있다. 아직 발견된 적은 없지만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컴퓨터가 예측한 천체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하를 시뮬레이션으로 생성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 가상은하 내부에서 별들을 생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 초에는 관측가능한 전체 우주공간에 수천억 개의 은하를 만들어 내고, 그 각 은하 내부에서 별들까지 생성하는 시뮬레이션도 성공했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상공간에서 생성된 별들 주변을 도는 행성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럼 그 행성들 중에서는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과 살 수 없는 행성이 있을 것이다. 만일 천문학과 생명공학이 손을 잡게 된다면, 그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지켜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가게 되면, 우리들 중의 일부는 혹시 인간이 누군가의 컴퓨터 안에서 생성된 디지털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갖게 될 것이다. 튜링은 우리가 실재하는 인간인지 혹은 디지털 정보로 탄생한 인간인지 분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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