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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 中. "전쟁 통해 민주주의 확산 못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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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영희=이라크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후세인 이후' 중동 지역의 정치가 달라질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조머=아랍세계는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동질적(Monolithic)이 아닙니다. 이라크에 1년 안에 민주정부가 수립된다고 해도 중동에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걸로 봐요. 이 지역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입니다. 아랍국가에는 부족사회에 바탕을 둔 그들 고유의 민주주의가 있어요. 부족사회의 구성원이 벽에 기대 앉아 있는 지도자를 찾아가 딸의 수술비용이나 아들의 학자금을 받아내는 그런 민주주의죠. 다만 아랍세계의 지식인들이 지금은 그들의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 막대한 오일 달러를 갖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을 과거보다 더 많이 하고 있을 수는 있어요.

김=걸프 연안국의 군주들은 후세인 몰락을 환영합니까.

조머=그들은 후세인을 저질(unsavory)이라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인 퇴출을 환영할 겁니다. 그러나 후세인의 운명이 자신들에게는 닥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라크전쟁 이후 그들은 미국을 더 신뢰하기보다는 더 불신하는지도 모릅니다.

*** 부시, 유럽 국가들 이간질

김=부시 정부에 현실적인 '후세인 이후'의 청사진이 있었습니까.

조머=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주변의 지식인들에게는 걸프전쟁 이후 10여년 동안 확신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필요하면 전쟁을 해서라도 민주주의를 확산해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확산할 수 없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내부에서 자라나야 해요. '악의 축'이라는 개념도 전쟁으로 민주주의를 확산하자는 확신을 가진 바로 그 지식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라크는 시작에 불과할 뿐 시리아와 이란.북한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그들의 이런 신제국주의적.도덕주의적 점령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걸로 봅니다.

김=신보수파들 말씀이군요.

조머=그래요.

김=재야 신보수파의 대표격인 로버트 케이건은 논문과 책에서 미국과 유럽이 이제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체하지 말고 아예 갈라서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조머=그는 미국인은 마스(Mars:화성이라는 의미로 전쟁을 상징)에서 살고 유럽인은 비너스(Venus:금성이라는 의미로 사랑을 상징)에서 산다고 말합니다. 이건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뒤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법보다 칼의 힘으로 마스에 산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19세기의 유럽입니다. 국제적인 합의나 조약이 아니라 힘을 앞세우는 세계질서를 말합니다. 미국은 지금 올드 유럽의 마키아벨리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거죠. 반대로 유럽은 과거의 미국같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법과 국제적인 합의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를 채택하고 있어요. 파트너를 신뢰하는 질서죠.

김=그런 걸 모두 계산에 놓을 때 미국과 올드 유럽이 화해할 전망은 어떻습니까.

조머=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는 필요불가결할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유럽과 미국이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김=그게 케이건의 주장 아닙니까.

조머=그의 분석에는 동의하는데 결론이 틀렸어요. 미국은 유엔이 미국의 말을 잘 따를 때만 유엔을 이용하고 유엔이 미국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유엔을 무시해버립니다. 미국은 지구 온난화에 관한 교토의정서와 국제형사법정에 반대하고 미사일 잡는 마사일을 제한하는 미.소(러시아)협정을 폐기했어요. 요컨대 미국은 거의 모든 국제적인 합의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줘요. 9.11 테러 때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에 대한 테러가 나토 회원국 전체에 대한 테러라고 선언하는 성의를 보였지만 미국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동맹관계를 완전히 무시한 거죠. 미국은 동맹국들의 간섭이 싫어 동맹의 테두리 안에 머물려고 하지 않아요. 또 하나 미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뀐 게 있어요. 2차대전 후 미국은 유럽의 통합을 지지했는데 부시 정부는 유럽통합에 반대합니다. 이라크전쟁 때 미국은 유럽 국가들을 이간시키고 분열시켰어요. 미국을 지지한 폴란드도 결국은 유럽으로 돌아올 겁니다.

김=유럽은 느긋한 심정이군요.

조머=미국.유럽관계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땅 위를 기는 것 같은 굴욕을 감수하지는 않을 겁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부시 사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부시 사이에는 아주 잘못된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나 실무차원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필요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 美압력이 北 핵 유혹 갖게

김=미국의 신우파는 이란에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조머=분명히 정권교체를 바란다고 봐요. 유럽은 건설적인 대화를 원합니다.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다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미국은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요구합니다.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할수록 이란은 핵무기를 가져야 미국의 공격을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돼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가졌다고 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김=러시아의 입장은 모호합니다.

조머=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확보한 데 대해 러시아는 대단히 불만입니다. 그 지역은 러시아의 하복부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의 주인 행세를 하는 걸 달가워하지도 않아요.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금 미국과 안정된 관계를 갖기를 바라기 때문에 보통 경우라면 반대했을 것을 감수하고 있는 편입니다.

김=이라크전쟁으로 세상이 달라졌습니까.

조머=이라크전쟁 이전에도 세계는 불안한 평화의 상태에 있었어요. 냉전이 끝난 뒤에도 세계는 전환기에 있고, 아직도 새 질서가 자리잡지 못했어요. 중국과 일본이 세계수준의 역할을 결정하지 못했고, 유럽 역시 여전히 전환기에 있으면서 10국의 새 회원을 맞아들이고 있어요. 유럽은 모든 정력을 내부 문제에 쏟고 있지만 유럽이 어떤 장래를 맞을지 아직 모릅니다. 우리는 혼란 속에 있고 모든 것이 일시적입니다. 새로운 패턴이 정착되려면 한 세대는 걸릴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미국.유럽연합(EU).러시아.중국.일본의 5강이 서로 협력하고 싸우고 견제하는 과거 유럽식의 세력균형의 질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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