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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조수미냐 플로렌스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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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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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노래를 잘 한다’는 건 다음 중 어떤 뜻일까. ①고음을 잘 낸다 ②소리가 크고 풍부하다 ③감정 전달을 정확하게 한다 ④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한다.

지금도 수많은 음악가의 고민일테지만 나는 이 고민이 1991년에 끝나는 줄만 알았다. 소프라노 조수미 때문이다. 그가 참여한 모차르트 ‘마술피리’ 음반은 충격적이었다. 조수미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조수미가 1991년 녹음한 ‘마술피리’ 중 ‘밤의여왕’ 아리아. 고음부로 향하는 길목에서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다. 아주 평범하게 노래를 이끌고 가는데 듣고나면 놀랄만큼 높은 음이 민첩하게 뻗어나온다. 사람이 아니라 악기 소리인 듯한 고음으로 조수미는 대중에게도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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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 노래에서만큼은 조수미가 선후배 소프라노를 압도한다. 웬만한 소프라노는 ‘고음불가’로 전락시킬만큼 높은 음이 나오는 곡이다. 조앤 서덜랜드, 에디타 그루베로바 같은 선배들의 소리는 조수미에 비하면 무겁고 둔탁하게 느껴진다. 조수미보다 10년쯤 어린 소프라노들과 비교해봐도 우열은 확실하다. 파트리샤 프티봉, 디아나 담라우 같은 세계적 스타도 고유의 스타일은 있지만 고음 부분만큼은 조수미만 못하다. 높은 음에서 경직된 소리를 내거나 고음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음악의 맥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고음부를 끝낸 소프라노의 입에서 얕은 한숨까지 터져나온다.

(한 네티즌이 편집한 ‘밤의 여왕’ 40명 비교. 날고 기는 성악가들도 이 노래에서만큼은 음정을 잃거나, 높은 음 부분에서 갑자기 템포가 느려지면서 한음한음 공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급차렷 자세도 바뀌는 성악가도 있다. 똑같은 고음을 불러도 퀄리티가 다르다.)

조수미는 달랐다. 극도의 고음을 부르면서도 오케스트라 반주의 템포까지 마음대로 끌고간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높은 음 쯤 하룻저녁에 수백번이라도 부를 수 있다는 태도다.

올해 데뷔 30주년인 조수미의 공로 중 하나다. 한 분야에서 ‘잘한다’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을 보여줬다. 세월이 흘러 조수미와 ‘밤의 여왕’을 함께 언급하는 게 식상해지는 때가 왔지만,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밤의 여왕’ 아리아로 성공한 가수는 조수미 뿐 아니다. 미국의 플로렌스 젠킨스도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플로렌스’의 실제 주인공이다. 말이 좋아 소프라노지 객석의 청중보다도 노래를 못했던 인물. 돈이 많아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었지만 ‘밤의 여왕’의 높은 음에는 절대 오를 수 없었던 소프라노. 그래도 이 노래에 집착해 자신의 음반에도 녹음해 넣었던 사람이다. 젠킨스는 1944년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팬이 많다. 희한하게 노래를 못했고, 더 특이하게도 계속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를 소재로 한 영화는 올해만 두 편 나왔다. 사람들은 그의 끔찍한 노래에서 계속한다는 것의 뜻깊음을 발견하고 삶의 추진력을 얻는다.

(어쩔 수 없이 듣게되는 젠킨스의 ‘밤의 여왕’. 혹시 부르는 사람 귀에는 이 노래가 괜찮게 들렸던 걸까 싶다가 뒷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된다.)

두 소프라노의 ‘밤의 여왕’은 기왕 뭔가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단 걸 보여준다. 조수미처럼 완벽하게 잘 하거나, 혹은 젠킨스처럼 독특하게 못 하거나. 둘 다 아니라면 ‘밤의 여왕’에 미련을 끊고 다른 노래를 찾아보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