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잡을 수 없는 통화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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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화관리가 너무 절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풀 때는 두서없이 풀어놓고 갑자기 긴축하는가하면 다시 무더기로 풀어놓는 등 올해 상반기통화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통화는 워낙 신축자재 하게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지만 요즘처럼 너무 진폭이 크게 오락 가락하는 것은 신축성이라기 보다 차라리 무원칙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5월 한 달의 통화운용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해진다.
이는 단순히 5월 한 달의 통화증가율이 높아졌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통화운용의 균형감을 찾기 어렵다는 뜻에서 그렇다.
5월중 총통화는 무려1조2백21억원이나 늘었다. 이는 월간기록으로는 사상 최고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 같은 공급증가가 갑작스런 긴축을 실시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나타난 점이 특히 주목된다.
물론 지난달의 긴축이 과연 시선에 맞고 실물의 움직임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었느냐 하는 점에는 정부와 경제계의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았다. 또 지금의 경제국면이 경기 확장기에 접어들어 있고, 3저의 기회를 활용하여 산업의 구조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처지에서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정부가 당초계획 했던 연간 13%내외의 통화증가율 목표를 실질적으로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만큼 실물경제의 올해 움직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통화나 조세, 재정의 측면에서 실물의 변화를 지원해야할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통화의 이 같은 적극 운용은 언제나 인플레의 소지를 잠재하고 있어 여간 신중하게 계획되고 월별, 분기별로 미 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점에서 보면 한 달에 1조원이나 통화가 늘고 그래서 올 들어 늘어난 총액의 63%를 차지하게 만든 통화관리는 아무래도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더구나 제2금융권까지 포함한 총유동성이 23%나 늘어난 점은 우려할만하다.
이 많은 돈이 당면과제인 산업개편과 설비혁신, 그리고 기술개발과 수출산업 시설투자 등 돈을 써야 할 곳에만 쓰여진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러나 현재 중앙은행을 통해 공급되는 본원통화의 상당부분이 이른바 부실기업 구제를 위한 특별융자의 형태로 이루어진 점, 금융기관대출의 상당부분이 부실 구제금융인 점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통화 공급의 폭발적 증가가 생산적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증가된 통화공급이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면 조만간 인플레압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자금의 편재가 일어나 금융취약부문인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동반할 수 있다. 급격한 통화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중 부도율이 높아진 점이나 시장금리가 소폭이나마 다시 오른 사실이 그것을 반증할 수 있다.
통화를 공급하되 그것이 생산적 투자에 이어지도록 공급경로를 재점검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라 판단된다. 그것을 위해서도 부실정리를 핑계삼은 구제금융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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