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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안중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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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사」는 똑같은 한자라도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뜻이 다르다.
우리말은 「장사」라면 기개와 체격이 우람한 역사를 말한다. 『장사 나면 용마 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선 그런 뜻이 아니다. 대수관 서점 발행 『대한화 사전』을 보면 「소시」 (장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정한 직업 없이 남에게 빌붙어 정치운동을 떠맡아 주먹(완력) 깨나 쓰며 일을 해내는 자.』
요즘 일본 문부성 심의를 통과한 일본 교과서 『고교 일본사』는 그런 장사로 우리 나라 안중근 의사를 꼽았다.
아마 지하의 안 의사도 이 얘기를 들으면 가가대소 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머리는 70여년 전이나 이제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우습기만 할 것이다.
장사는 워낙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1천 7백년도 넘은 고사서 『사기』에서 장사는 역시 기개와 호기가 있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인간 안중근의 면모는 하르빈 역두에서 「이토」(이등박문)를 암살하고 나서 일본 법정에 섰을 때 잘 나타난다. 그를 심문한 일본검사(안강정사랑)의 논고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다.
『안중근은 본사건의 주모자로서 한국사람 중 특위한 성격이 있는 인물이다. 상당한 재산이 있어 중류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 지방의 명족이며 천주교 신자로 성질이 극히 강장 하고 의지가 매우 굳세며 정치사상이 철저한 인물이다.』
일본 문부성은 이런 인물을 두고 건달이나 정치깡패라고 하는가.
이 법정기록은 일본 자신이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옥중의 안중근 의사는 일본 법관, 감옥의 형리, 취조관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그들의 청으로 2백폭이나 되는 휘호도 써주었다.
오늘까지도 그중 10여 점의 명문휘호가 전하는 것은 일본 사람들 손에 의해서였다.
-『이로움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견리사의 견위수명).』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장부강사 심여철 의사림위 기사운).』
그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이라는 대 논문을 집필하다 말았다. 동포에게 보내는 글도 남겨 놓았다. 청국의 대 정치가 원세개는 안 의사의 사형 소식을 듣고 조시를 바쳤다.
『…생무백세 사천추 (살아선 백살이 안 돼도, 죽어서 천년을 사네)』
일본은 이제 경제대국이 되었으면 인물과 역사를 보는 눈도 좀 대인다워 질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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