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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비 넘었지만 산너머 산|급템포로 움직이는 「개헌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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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정국이 빠른 템포로 움직이고 있다.
27일 두 김씨의 회동으로 신민당이 장외에서 장내로 급선회, 임시국회와 개헌특위설치에 참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개헌문제는 이제 하나의 커다란 고비를 넘어 새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이미 임시국회의 소집은 합의됐고 헌특설치에도 사실상 별다른 장애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여야간에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인 사면·복권문제를 신민당 측이 스스로 헌특과 연계시키지 않고 분리하여 다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신민당 측, 특히 동교동 측이 끈질기게 고수해온 직선제개헌보장도 사전조건에서 제외되고 일단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논의한다는 입장으로 크게 후퇴해 버렸다.
대신 신민당 측은 문익환씨를 비롯한 구속자의 석방을 헌특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민당의 장내진입이라는 적극적 자세전환에 큰 부담을 지게된 민정당 측이 충분히 신축성을 발휘하여 대처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임시국회를「헌특국회」로 규정하고 당력을 기울여왔던 민정당으로서는 신민당 측의 급선회로 모든 문제가 손쉽게 풀린 만큼 정국전반의 긴장완화라는 차원에서 상당한 완화조치를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29일 열리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과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회담에서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완화조치를 취할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이것이 내주로 예상되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 총재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점 칠 수 있다.
즉 앞으로 잇달아 열리는 여야간의 두 고위회담이 헌법특위 설치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킬 성과를 충분히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이처럼 개헌일정을 마치 합의나 한 듯 서두르고 있는 것은 비록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이고 이해를 달리하고 있을 망정 일단 국회를 통해 개헌문제의 해결에 접근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가 헌특 구성의 합의까지는 순탄하게 진행이 되더라도 헌특 구성자체와 그 운영까지도 용이하리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헌특의 시한·구성비 등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헌을 임기 내에 한다면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88년2월 이전에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서 그에 의한 새 정부를 구성한다는 작업이 손쉬울 수가 없다.
우선 개헌을 위해서는 개헌안의 국회통과, 국민투표 등의 절차가 필요하고 헌법의 권력구조나 선거제도가 지금과 크게 달라져 국회해산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할 필요가 있거나, 할 경우에는 이를 위한 법개정작업·행정적 준비 등 부수 작업이 더욱 방대해진다.
더욱이 내년 상반기에 지방자치제를 실시한다는 것이 여야 합의사항이고 보면 내년 상반기 이후는 선거가 잇달아 실시되어야한다.
선거제도가 바뀌거나 선거구가 조정되면 이를 위한 필요한 행정조치 등도 엄청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개헌을 위한 절차나 법개정작업은 일찍 마무리되어야 하고 아무리 늦어도 87년 초반까지는 확정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신민당 측이 개헌특위의 시한을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20일까지로 못박은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 전에 개헌작업을 완료해야 정기국회에서는 국회의원선거법 등 관련법안을 손질할 수 있으며 이런 일정이 신민당의 민주화일정인「86년 개헌」「87년 선거」와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민정당 측은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정기국회 전까지 민정당의 개헌시안을 확정하겠다는 것이 민정당이 공개한 정치일정의 전부다.
물론 민정당 안에서는 하루빨리 당 체제를 정비해야하며 권력구조 등 개헌에 대한 당의 복안이 시급히 확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전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당 측이 개헌일정을 선뜻 밝히지 못하고있는 이유는 물론 민정당이 개헌안에 대한 내부적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당 안에는 권력구조문제를 놓고 상당한 이견과 갈등이 잠복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를 해소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여야의 속사정이 이렇고 보면 헌특의 시한에서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신민당 측은 9월20일 시한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이후는 헌특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주장은「86년 개헌」이라는 전체 테두리 속에서의 전술이라고 보여지고 따라서 연내개헌정도까지의 신축성은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여당 측이 헌특의 활동시한을「연내」로 못박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거법 등 부수 법안도 어차피 헌특에서 처리해야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노-이 회담에서 잠정시한을 두는 등 절충의 여지를 보여야할 것이다.
헌특의 명칭은 민정당 측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으므로 시비 거리가 못된다고 하더라도 헌특의 여야구성비는 그런 대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 측은 의석비율을 일단 주장하고 신민당 측은 일단 동수를 들고나올 것이 뻔한데 헌특의 주도권 등을 고려하면 금방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특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는 물론 개헌내용이다. 신민당 측은 직선제를 헌특구성조건에서 제외했지만 논의과정에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도 동시에 표명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 민정당 측이 어떤 개헌안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협상의 방향이 정해지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뤄볼 때 민정당 측은 직선제이외의 방안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여야의 절충이 극히 어려워질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신민당이 헌특설치의 전제조건에서는 비록 제의했지만 김대중씨 등의 사면·복권문제는 개헌내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 틀림없다. 김대중씨가 그의 사면·복권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개헌협상의 고삐를 늦추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권 안에서도 이 문제를 전반적인 정국상황과 관련해서 판단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헌특의 구성이나 활동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로 뒤뚱거리게 되면 이번 국회헌특 전략에서 상도동 측에 선제 당한 동교동 측은「9월20일 개헌시한」「직선제 관철」등 두 김씨 간의 합의사항을 들고 나와 제동을 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민정당 안에서도 합의개헌전망이 어두워지면 다른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표면으로 떠오를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개헌 전도에는 이밖에도 예상할 수 없는 암초들이 수두룩이 깔려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들이 노-이 회담이나 영수회담에서 깡그리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헌 일정이 숨가쁘게 전개되면 될수록 상대의 진의를 캐고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내려는 막후접촉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관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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