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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씨네통] “열 여섯 살,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

TONG

입력

업데이트

풀리지 않은, 보자기 속 손거울

씨네통, 보자기 속 손거울

장르

실험다큐

러닝타임

9분 14초

제작연도

2016

만든사람

이하윤(한솔고 1)

제작의도

어른이 아닌 10대의 시선에서 위안부 문제를 담고 싶었다.

줄거리

해맑은 열여섯살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그녀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행복한 모습 위로 화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절망적이고 아픈 의문의 자막이 지나간다. 영상의 주제에 혼란이 올 때쯤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며 음악이 깔리고 웃는 아이들 앞에 더 어둡고 강한 자막이 지나간다. 드디어 검은 배경 위로 이 영화의 의도가 드러난다.

지난 24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 재단’에 10억엔(약 110억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인데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위안부 재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출연금 지급이 완료되면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 측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내기로 한 돈은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이나 치유금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죠.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의 시작인데 말입니다.

이하윤 감독(한솔고1)은 중학 시절을 보낸 이우 학교에서 졸업 작품으로 ‘보자기 속 손거울’을 만들었습니다. 2016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늘날 소녀들의 모습 위로 70년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교차하는 실험다큐멘터리입니다.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과 달리 절망적인 내용의 텍스트를 보며 궁금증을 갖게 될 즈음 영상은 흑백으로 전환되며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순간 작품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 영상과 텍스트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죠. 10대의 시선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보자기 속 손거울’이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0대의 시각에서 본 위안부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는 이하윤 감독.

10대의 시각에서 본 위안부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는 이하윤 감독.

하윤 학생은 2015년 2월 졸업 작품 주제를 고민하던 중 드라마 ‘눈길’(KBS)을 보게 됩니다. 평소 어렵고 정치적인 이슈라고 생각했던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죠. 극영화를 생각했던 이 감독은 시나리오도 쓰고 촬영을 진행하였지만 제작 중반 즈음 만족스럽지 않은 영상의 수준을 보며 고민하게 됩니다.

당시 큰 의지가 되었던 것은 친구 어머니인 심혜정 감독(물구나무 서는 여자, 2015)이었습니다. 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눈길’을 봤을 당시 자신의 마음이 왜 그토록 아팠는지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이 자신과 같은 10대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작품의 컨셉을 바꾸게 됩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겠다는 말에 주변 어른들 모두 만류하셨어요. 아직 어리고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였죠. 저도 작품을 만들면서 오히려 할머니들께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도리어 상처를 드리는 것은 아닐까 항상 고민했어요.”

무엇보다 영상을 만드는 법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모든 것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를 구비하기 힘들어 아이폰으로 모든 촬영을 진행하였고, 졸업 작품으로 제작할 당시에는 편집도 ‘무비 메이커’ 프로그램을 사용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촬영을 위해 방문한 수많은 학교로부터 제지를 당한 일이었습니다.

“분당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를 돌아다녔는데 다 퇴짜 당했어요. 처음에는 울었죠. 촬영한 게 있어야 뭐라도 만들 수 있잖아요. 촬영 자체를 할 수 없으니까 속이 상했죠. 결국에는 어른처럼 차려입고 친구 언니인척 하면서 전해 줄 게 있다고 학교에 들어가서 촬영한 적도 있어요.”

순탄하지 않은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 감독이 ‘보자기 속 거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안부 문제는 피해 할머니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이해한다고 말한들 제가 겪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다만 사람들이 생각해 주길 바랐어요. 70년도 더 된 일이니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두 알잖아요. 하지만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고 봐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고 나서 작품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본 관객은 당연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겠죠.”

‘보자기 속 손거울’을 통해 하윤 학생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청소년 감독으로서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산만하고 거칠고 분명 퀄리티는 떨어져요. 하지만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들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방법을 모색하고 해결했지, 만들기 전에 할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한계 짓지 않았거든요. 사람들 마음속에 슬며시 들어가서 ‘푹’ 찌르는 그런 영상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 장점이기도 하고요.”

-'보자기 속 손거울'을 만든 이하윤 감독이 추천하는 역사적 문제를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소재는 언뜻 보기엔 딱딱해요. 하지만 굉장히 뭉클한 구석이 있죠.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아픈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부분도 있고요.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예요. '형'이라는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동무에서 형으로.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보기도 했어요.

글·사진=김재영 인턴기자 t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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