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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방한과 우리의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례 외무장관회담을 위해 내한한 「슐츠」미 국무의 한국방문을 계기로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가 우리 고위층과 만나 한국의 민주화문제를 논의한다느니, 여야의 타협을 주선한다느니 하는 주로 우리 내정에 관한 문제들이다. 「슐츠」방한의 공식 목적은 작년에 이어 열리는 제2회 한미외상회담 참석과 동경서 열린 서방7개국 정상회담 결과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본래의 업무 이외의 문제에 대한 그의 언행에 더 민감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미군이 국내에 주둔하는 오늘의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결코 자연스런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4월14일 미국무성의 「시건」 아-태 차관보가 『한국의 정치파벌들은 국내투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외세를 추구하는데 능란하다』고 한 말에서 부끄러움과 함께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주권국가인 우리가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어 나간다는 보다 확고한 신념과 자세를 확립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을 미리 취했다면 결코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헌법개정, 노사문제와 작게는 대학생의 전방부대 입소문제 등으로 극한적인 대립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생들의 분신자살과 시위대의 돌팔매질로 아까운 청년들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 당면문제들에 관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의 합의부재로 한걸음도 희망적 전진을 보이지 못했다.
바로 이런 때 「슐츠」국무가 왔다. 그는 분명히 외국인이고 외국정부의 대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세계전략에서 안보상의 이해를 같이하는 혈맹일 뿐 아니라 그의 중재노력이 우리의 답답한 현상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의 민주화발전과 사회적 안정은 미국에도 분명히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조야가 오래 전부터 우리 내정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7일 도착한 「슐츠」국무는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 어느 하나 우리 국민이 추구하는 방향에서 어긋나는바 없다. 따라서 우리로선 마다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다만 경제문제에선 미국의 요구가 우리에겐 부담스럽다.
소형 컴퓨터와 담배, 일부 농산물 등의 상품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보험 등 서비스산업 진출에 대한 문호개방, 저작권·특허 등 지적소유권에 대한 보호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막대한 방위비와 GNP의 절반에 해당하는 외채의 부담을 안고 있고 무역수지는 적자상대다.
특히 방위분야는 미국의 안보와 세계전략에 기여하는 부문일 뿐 아니라 우리는 매년 11억 달러 상당의 미군 주둔비를 지불하고 있다. 한미 경제협력은 그런 기반 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물은 이번 기회에 정치부재와 출구 없는 대치상태가 외세를 끌어들이는 소지를 마련하는 것은 아닌지를 자생하고 국내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자세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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