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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개월만의 한·일·중 외교장관회의…'경극배우' 왕이의 퍼포먼스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는 중·일 및 한·중 갈등으로 인해 삐그덕거리던 3국 협력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 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외교가는 특히 처음으로 방일하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퍼포먼스를 주목하고 있다. 왕 부장은 주일 대사도 지낸 지일파로 꼽혔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한 2012년 말 외교부장에 취임한 뒤로는 역사 왜곡 도발을 하는 일본에 거친 언사를 날리며 압박하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자임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일본을 잘 아는 왕 부장의 취임 소식에 기뻐했던 일본 외무성은 싹 바뀐  왕 부장의 태도에 한동안 당황을 금치 못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선 왕 부장의 보여주기식 태도에 한국이 당황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처음으로 한·중 외교수장이 만난 자리(7월24일)에서 외교 결례라고 부를 만한 행동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모두발언에서 “한국 측이 신뢰를 훼손했다”며 공격적 발언을 하더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발언할 때는 고개를 흔들거나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윤 장관의 모두발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중국측은 취재진을 퇴장시켰다.

다음날 이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났을 때는 정반대였다. 이용호를 먼저 기다리다 환한 미소로 맞는가 하면, 이례적으로 제3국인 한국 취재진에 양 측이 덕담을 주고받는 회담 앞머리를 공개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 외교부가 북·중 외교장관회담 뒤 낸 보도자료는 한반도 비핵화 강조 외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외교관은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고 북한을 끌어안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과잉 연출을 한 것이란 게 상황을 지켜본 국내외 외교관들의 반응이었다”며 “왕이 부장의 능청스런 연출에 경극 배우 뺨친다는 이야기들을 나눴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번 장관회의에서 왕 부장이 한국과 일본 측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서울 회의 이후 1년 5개월만에 만난 한·중·일 수장이 회의 뒤 할 입장 발표에서 갈등 현안을 어느 정도 언급할 것인지를 두고서도 신경전이 치열하다. 공동발표문을 낸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3국 장관이 각기 회의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 회의 일정이 촉박하게 확정된 탓에 문안을 조율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특히 왕 부장이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뿐 아니라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경고메시지 등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 지가 핵심이다. 지난해 공동발표문에는 한·일의 입장을 반영해 이례적으로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라는 내용은 한·중이 일본을 겨냥해 넣은 것이었다.

이번 장관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다음달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지 여부도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사드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정상 차원에서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지, 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될 지 등에 대해 양 측이 탐색전을 벌일 전망이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이번 회의는 G20 정상회의 뿐 아니라 동아시아정상회의, 아세안+3 등 잇따르는 다자 정상회의의 전초적 성격으로, 하이라이트는 정상 행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외교장관들이 만나서 큰 갈등 이슈를 부각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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