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덕혜옹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2호 1 면

?? VIP 독자 여러분,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지난 광복절에 영화 '덕혜옹주'를 봤습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서 원치 않는 일본 유학과 결혼,그리고 조현병을 얻어 황량하고 비극적 삶을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의 일생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서였습니다. 덕혜옹주의 삶이 그닥 주목받았던 것 아니지만,관객들 대다수가 아마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그린 이 영화가 요즘 뜨거운 팩트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심적 테마로 설정하고 있는 영친왕의 상하이 망명작전과 황족 일가의 독립운동이란 극적 요소의 허구성 논란 때문입니다.?? 감독(허진호) 자신이 이 영화를 팩션(사실에 기초해 창작을 가미)이라고 규정하고 있을뿐더러 영화란 장르 자체가 애당초 상상력을 동원한 창작성에 기반한 예술인 만큼 영화 자체를 비난하거나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또 '광복절 마케팅'에 기댄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먼지를 뒤집어쓴 박제 형태로 전해오던 역사 속 인물을 끄집어내 활발한 토론의 장으로 불러낸 건 영화가 주는 또다른 위력이란 점에선 긍정적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 그러나 한켠으론 자괴감이 일기도 합니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그려진 덕혜옹주의 행적을 고스란히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건 아닐까,왜 하필이면 한국사의 가장 뼈아픈 대목이자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은 변곡점인 일제 침략의 역사를 사실과는 동떨어진,흥미로운 상상력을 가미한 허구로 그려야만 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서글픔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더군요.?? 덕혜옹주의 비극적 생애는 망국이 초래한 치욕입니다. 그런데 이 망국사를? 퍼즐 조각 맞추듯해 꿰맞춰 놓은 사람이 다름 아닌 일본 학자였다는데 이르면 낯이 화끈거립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덕혜옹주의 스토리는 대부분 한 일본인 여교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도쿄대 출신의 혼마 야스코(本馬恭子) 갓스이여대 교수가 주인공으로,그녀는 덕혜옹주의 흔적을 따라 팩트를 취재하고 관련 인물들의 증언을 입혀『도쿠케이 히메(德惠姬)』(1998년)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덕혜옹주가 불면증을 겪다 조발성치매 진단을 받았고 쓰시마 번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했으며 외동딸 마사에는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는 기초적인 팩트조차 혼마 교수가 발품 팔아가며 취재한 결과물인 것입니다. ?? 황실의 후예로서,또 한 여인으로서 겪은 기구한 인생은 나라잃은 민족이 처할 수밖에 없었던 통한의 역사요,일제가 얼마나 악랄하고 잔혹하게 한국민을 억압·말살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망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그런데도 그 피맺힌 역사를 우리 스스로 찾아 쓰지 못하고 일본인 교수가 남긴 저작물에 의존하고 있다니 가슴이 갑갑해옵니다.?? 혼마 교수가 덕혜옹주의 발자취를 더듬어 일본 열도를 훑는 동안 그 많은 한국의 역사학자·교수·문인들과 언론은 무엇을 했던가요. 일본을 소리높여 규탄만 했지,왜 우리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는 소홀하지 않았던가요. 친일 논란,건국절 논쟁만 무성했지 메이지유신으로 기사회생한 일본이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으로 발돋움한 극적 변환의 힘을 탐구하는 일은 손놓고 있지 않았던가요. 아직도 우리의 역사 교과서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만 가르칠 뿐 극일(克日)의 힘과 지혜는 가르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이런 부끄러운 모습과 결별해야할 때입니다. 학계,특히 역사학자들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정한론자(征韓論者)들의 정신적 지주격인 요시다 쇼인,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으로 조선 침탈의 이론적 토대로 제공해 1만엔권에 모델로 등장했을 정도로 일본 국민의 공경을 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인물에 대해,일본에서보다 더 많은 연구서와 서적이 한국에서 쏟아져나와야 합니다. 극일의 힘과 지혜는 상대를 바로 아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테니까요. 저도 이 글을 마치면,한동안 염천(炎天) 때문에 한켠에 밀어놨던 책『메이지 유신』을 다시 꺼내들까 합니다.


?? 이번주 중앙SUNDAY는 덕혜옹주를 '고모'로 불렀던?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사단법인 황실문화재단 총재를 인터뷰했습니다. 고종의 5남인 의친왕의 13남 9녀 중 11남인 그는 "고모는? 강제 결혼한 첫날밤부터, 거만하다고 매를 맞으셨대요. 그래서 정신착란과 치매까지 걸려 돌아가셨는데 이런 역사를 속속들이 공부한 다음 영화를 찍었더라면 좋았을텐데요"라고 감회를 밝혔습니다. 꽤 긴 분량의 인터뷰인데,절규하듯 내뱉은 황손의 마지막 마디가 긴 여유를 남깁니다.? "헬 조선이란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그렇게 격하해서는 안됩니다. 역사가 있는 나란데.신세대가 그러면 안 되거든요.우리나라는 똘똘 뭉쳐 통일만 하면 세계적으로 최고의 나라가 될 수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서열 2위 태영호 공사의 탈북 귀순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판 '금수저' 출신으로 김정은 정권의 최측근으로 활약해온 그의 귀순 동기를 놓고 '이민형 탈북'이란 흥미로운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세련된 매너,그리고 수재급 아들을 둔 북한 엘리트의 귀순은 3대 세습으로 정권을 이어온 북한엔 새로운 고민거리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번주 중앙SUNDAY는 과거 생계형,범죄형 탈북에서 최근들어선 자녀 교육과 좀더 안락한 생활을 좆아 탈북하는 엘리트 탈북자들의 유형과 실태,그리고 뒷얘기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 "아이 아빠가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많은 아이들이 익사해 죽는다는 걸 알았다. 더이상 이런 아이들이 없도록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 수영황제 펠프스의 은퇴 회견의 감동은 열대야도 맥 못추게 한 시원한 청량제였었죠.?? 17일간의 열전 레이스를 마치고 오는 22일 막을 내리는 리우 올림픽이 남긴 감동의 순간들을 중앙SUNDAY가 리뷰해봤습니다. 리우 올림픽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퇴조한 국가주의,승부 지상주의를 넘어 선수와 관객이 하나 돼 즐기는 스포츠로의 진화,승부를 놓고 경쟁하면서도 풋풋한 인간애를 발휘한 감동의 순간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