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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새 면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용철 대법원장은 23일 취임식에 이어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새 사법부 운영 전반에 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오늘의 사법부에 부여된 가장 큰 사명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며 앞으로 사법부 본연의 자세를 지켜 국민의 권리보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헌법에 명백히 보장되어 있고 법치국가의 본질인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 보장에 힘쓰고 인권보장을 위한 제반운영과 제도의 과감한 개선을 다짐했다.
국민의 권리 신장을 위해 구속 남발을 억제하고 구속적부심사 제도와 보석제도를 보다 활성화하며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에게만 영장업무를 담당케 하는 등 불구속 원칙과 무죄 추정원칙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뜻도 표명했다.
문제가 되었던 법관인사 역시 서열과 능력·자세를 고루 참작하는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것도 약속했다.
신임 대법원장의 이 같은 포부는 그 동안 일그러진 사법부의 면모를 새로이 하는 결의의 표시이자 사법부를 지켜보며 안타깝게 여기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동안 사법부는「위기」란 느낌을 줄만큼 불신을 받아 왔다. 학생들의 재판 거부와 법정소란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심지어 항고기피 사태도 잇따랐다.
학생들의 이 같은 태도는 불리한 재판을 받을 것이 명백하다는 선입관이나 스스로 무죄를 지나치게 확신해 아예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어찌되었건 사법부의 분쟁해결 능력을 의심받는 중대한 사태이며 이렇게 된 데는 사법부 불신, 사법권 독립과 무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부의 권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성이 상실된 것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법부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성실치 못했던 데서 기인한 불행한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김 대법원장이『법원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므로 국민의 불신을 사지 않도록 시대적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적절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법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행정과 입법부가 맡은바 역할과 기능을 다하고 있다면 사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오늘처럼 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에 처한 상황이 그렇지 못한 탓에 이 시대의 고민이 종국에는 사법부의 재단에 맡겨지게 마련이며 이 때문에 사법부의 역할과 국민의 기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 대법원장의 그 같은 소신 피력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해방 후 헌정사에서 언행의 불일치를 수없이 경험해 왔다.
국민에게 한 엄숙한 공언과 무지개 같은 약속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거나 퇴색 또는 굴절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김 대법원장의 공언을 환영하면서 그 공언이 성실하게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기대하고 예의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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