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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고리토] 네이마르 살아난 브라질, 독일 너 잘 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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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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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마르는 조국 브라질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을까. 21일 열리는 독일과의 결승전은 2년 전 월드컵 4강전 1-7 참패를 설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7일 온두라스와의 4강전에서 14초만에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는 네이마르. [리우 AP=뉴시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스타 네이마르(24·바르셀로나)는 신과 비슷한 존재다.

한국 울린 온두라스와 준결승전
올림픽 최단시간 14초 만에 골
2골 2도움 기록 6-0 대승 이끌어
조별리그 무득점 비난하던 팬들
2년 전 월드컵 1-7 참패 설욕하고
64년 만에 첫 축구 금메달 기대

월드컵이나 유럽 챔피언스리그 등 큰 무대에서 보여주는 괴물 같은 득점력과 화려한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지만 네이마르는 벌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축구 재벌이 됐다. 그의 연수입(5600만유로·702억원)은 팀 동료 리오넬 메시(29·바르셀로나)의 소득(5000만 유로·627억원)을 추월했다. 1500만명의 축구선수를 보유한 브라질에서 ‘자타공인 넘버원’으로 자리매김한 네이마르는 이제 ‘세계 축구 60억분의 1’에 다가서고 있다.

18일 브라질 리우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리우 올림픽 남자 축구 4강전은 네이마르의 존재감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무대다. 경기 전 호르헤 루이스 핀토(64·콜롬비아) 온두라스 감독이 “네이마르를 충분히 묶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네이마르는 전반 킥오프 후 정확히 14초 만에 온두라스의 골망을 흔들어 핀토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올림픽 축구 최단시간 골이다. 종전 기록은 2012년 런던 대회 결승전에서 나왔다. 멕시코의 오리베 페랄타(32·클럽아메리카)가 브라질을 상대로 29초만에 골을 넣었다. 네이마르의 새기록으로 브라질은 축구 역사의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찢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네이마르가 1골 2도움을 보탠 데 힘입어 브라질은 온두라스에 6-0 대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사실 온두라스전을 앞두고 살짝 긴장했다. 지난 14일 한국과의 8강전이 떠올라서다. 4강에서 브라질과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한국의 경기를 지켜봤는데 어이없게도 0-1로 한국이 지고 말았다. 이번 대회 참가국 중 가장 아름다운 공격 축구를 보여준 신태용호가 온두라스의 ‘침대 축구(언제 봐도 인상적인 표현이다)’에 무너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스페인어로 온두라스(honduras)는 ‘깊은 곳’이라는 뜻인데 한국이 온두라스가 깊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한국이 한 골만 먼저 넣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브라질이 4강에서 한국을 만났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풀지 못한 궁금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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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다쳐 헬기로 수송된 네이마르. 독일과의 4강전에 뛰지 못했다. [중앙포토]

알고 보면 네이마르는 브라질 축구팬들에게 칭찬 만큼이나 욕도 많이 먹는 선수다. 브라질 대표팀으로 출전했을 때 번번이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네이마르는 “해외에 나가서 큰 돈을 벌더니 국가대표팀 활동을 등한시한다”는 비판에 항상 시달린다. 네이마르가 이번 대회 조별리그를 무득점으로 마치자 “주장 완장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거나 “브라질 여자축구 간판스타 마르타에게 축구 과외를 받는 게 어떠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에 적힌 네이마르의 이름을 매직으로 지운 사진이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스포츠 스타가 종종 가혹할 정도의 비난을 받는 건 한국과 브라질의 공통점 중 하나다.

그러나 네이마르는 온두라스전에서 4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안팎의 비난을 잠재웠다. 그를 비난하던 홈 팬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네이마르를 중심으로 뭉치는 분위기다.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5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후로 12회 출전했지만 은메달 3개, 동 2개로 번번이 우승 목전에서 무너졌다. 안방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은 그동안의 한을 씻을 절호의 기회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 결승에서 독일을 만난다. 2년 전 월드컵 4강에서 브라질에 치욕적인 1-7 패를 안긴 라이벌을 2년 만에 올림픽에서 다시 만났으니 참 묘한 인연이다. 2년 전 네이마르는 부상으로 독일전에 나서지 못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한동안 “(독일전에) 네이마르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21일 새벽 리우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리는 독일과의 남자 축구 결승전은 그래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네이마르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캡틴 브라질’ 대관식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결승전 킥오프 휘슬이 울릴 그 날이 기다려진다.

정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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