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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술 끊고 노래, 생명존중 콘서트로 다시 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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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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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그룹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인기 그룹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45)를 만난 지난 11일은 그의 형 김재기가 세상을 떠난 지 23년째 되는 날이었다. 매년 형이 떠난 날을 조용히 기념해왔다는 그는 아침에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버린 그대여/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보고싶다 말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시다. “형은 저에게 꿈을 이룰 기회를 준 은인이자 평생 넘어야 할 산이었어요. 아직도 ‘사랑할수록’을 김재기가 부른 노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 곡을 ‘우리 형제가 함께 완성한 노래’라고 생각해요.”

록그룹 ‘부활’ 전 보컬 김재희
형 김재기 이어 ‘사랑할수록’ 히트
갑작스런 형 죽음 뒤 우울증, 방황
딸 웃는 모습에 다시 기타 들어
자작시 83편 담은 시집 내기도

1993년 여름, 부활의 보컬로 발탁돼 ‘사랑할수록’의 데모테이프 녹음을 막 끝낸 형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빈자리를 목소리가 비슷했던 세 살 터울의 김재희가 채웠다. ‘사랑할수록’ 앨범은 100만 장 넘게 팔리며 대히트를 기록했고, 그는 멤버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노래했다. 하지만 형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우울이 찾아왔고, 동료들과도 사이가 틀어지면서 96년 부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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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의 ‘부활’ 멤버들. 왼쪽부터 기타 김태원, 보컬 김재희, 베이스 정준교, 드럼 김성태. [중앙포토]

그가 최근 다시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생명존중’의 가치를 노래로 전하는 가수이자 시인으로서다.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극심한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포장마차, 대리운전, 리어커 옷장사 등을 했지만 번번이 술의 유혹에 넘어가 실패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어느날 초등학생이 된 딸 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다시 시작해보자’는 결심이 찾아왔다. “술을 끊고 등산을 시작했어요. ‘나에게 남은 건 노래밖에 없다’ 싶어 무작정 거리로 나갔습니다.”

2014년 2월 그렇게 시작한 ‘생명존중 콘서트’를 34회째 이어왔다. 공원과 카페 등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어디든 찾아가 자살예방 메시지를 담은 자작곡 ‘함께 가는 길’ 등을 불렀다. ‘생명존중 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인 건 “노래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 주변엔 유독 죽음이 많았어요. 형의 사고도 그렇고,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진영(고 최진실의 동생)이와 ‘투투’ 멤버 지훈이도 자살을 했죠. 그들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노래로나마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친분이 있던 시인 김시은씨의 제안으로 공동시집 『나는 늘 물음표를 향해 걸어간다』도 펴냈다.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때그때 단상을 SNS에 올렸는데, 시은이가 ‘이게 바로 시’라고 하더군요.” 시집에는 ‘동네 꼬마 아이들이 지나던 날 보고/잘생겼다 했다네//기분 좋아/과자값이라도 주려 지갑을 꺼냈지/돈이 하나도 없었다네’(‘쪽팔린 세상’) 등 힘겨웠던 과거에서부터 ‘숨 쉬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긍정이 빚어낸 기적들’(‘내 것’) 같은 희망적인 내용까지 총 83편이 실렸다.

생명존중 콘서트가 조금씩 알려지며 그를 찾는 무대도 많아졌다. 지난해에는 역대 보컬들과 함께 부활 30주년 콘서트 무대에 섰다. 뮤지컬 ‘사랑해 톤즈’에서 주인공 이태석 신부 역할을 한 것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는 “생명존중 콘서트를 제대로 된 공연으로 만들어 100회까지 이어가는 게 목표”라며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비로소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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