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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200회 집필, TV극 새 장르 개척|김정수씨와 향토 드라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부화로 얼룩진 TV드라머계에 벌써 6년째 고향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삭막한 도시인에게 자연에의 향수를 잔잔히 전달해주는 향토 드라머가 새로운 방송문화 풍토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80년10월 차범석극본·이연헌연출 『박수 칠때 떠나라』로 첫 방영을 시작한 MBC-TV의 『전원일기』가 바로 그 프로. 이 드라머는 그동안 숱한 화제와 사랑을 받으면서80년대 TV사에 향토 드라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오고있다.
첫 방영이래 몇 사람의 극작가를 거쳐 82년4월부터 이 드라머를 단독 고정 집필해 온 작가가 바로 김정수씨. 37세의 주부이자 두남매의 어머니다.
『새 집필자로 소개됐을 때 어머니역인 김혜자씨가 「인생경험이 없는 젊은 여자가 쓰게된다니 이젠 틀렸구나」하는 절망적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집필결심을 굳혔습니다. 연기자가 저토록 애착을 갖고 있는 드라머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거든요』그동안 2백여 회를 집필하면서 쓴 원고지만도 2만여장. 이 드라머로 83년 「제10회 한국방송대상 TV극본상」과 「제1회 흙의 문예상」을 수상했다.
『인기를 의식하고 써본 적은 없어요. 단지 드라머를 집필해오면서 제 스스로가 정화돼가고 있다는 기쁨을 맛봅니다』이제 향수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대가족제도, 혈연의 소중함, 고유의 세시풍속(드라머 속에서는 5년째 매년 동지날 팥죽을 쑤고있다)등이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풀이한다. 『처음 몇회분을 상상력에 의존해 쓰다보니 소재가 막혀요. 「내가 거짓말을 쓰고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지요』그래서 찾게된 것이 집 부근인 성남의 모란장.
『장터에서 막걸리를 마시고있는 촌부들, 고무신 한 켤레를 사기 위해 수십번씩 손가락으로 재보는 시골아낙네들…. 그때 비로소 「살아있는 농민」을 만난거죠. 지금도 1주일에 한번씩은 모란장을 찾고있어요』
뿐만 아니라 김씨는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가까운 시골인 이천으로 향한다. 1년에 한두 차례 전남 고흥의 시댁을 찾는 것도 크나큰 도움이 된다. 『과수원을 하시는 시아버님으로부터 소재를 얻을 때가 많아요.』
신문 스크램도 김씨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일과. 8개 일간지를 비롯, 『농민신문』, 잡지 『새 농민』등도 꼼꼼히 읽고 메모해둔다.
드라머가 방영돼 오는 동안 시청자들의 숱한 격려를 받았지만 김씨는 집필도중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이 TV드라머가 갖고있는 소재의 제약이라고 털어놓는다.
『요즘 시골이 저런 목가적 풍경이냐, 왜 농촌이 안고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파헤치지·않느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소값·돼지값 파동, 농약사건, 이농현상, 추곡수매가 문제 등을 접할 때마다 심각한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돼지파동을 정면으로 다뤘던 어떤 드라머는 제작도중 취소된 적도 있었다는 것.
김씨는 자신의 소망중의 하나가 『농민들이 이 드라머를 보지 않는 것』이라며 쓰게 웃는다. 『매회 농촌이 안고있는 고뇌나 애환을 김회장 집이나 일용네의 일상을 통해 암시하는 정도로 그치게 됩니다. 농민이름 팔아 원고료 번다는 얘기는 안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백화『흙바람』, 2백50화 『제비』, 2백61화 『양지뜸 장사』등은 농촌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전원일기는 어차피 사람 사는 얘기를 보여주는 평범한 드라머인 만큼 언제나 「인간애」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어른들에게는 상실한 유년의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너희 아버지·삼촌이 살았던 아름다운 땅이 저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을 뿐입니다』『전원일기』가 요지부동의 인기를 자랑하자 KBS-TV의『산하』『고향』『대관령』등이 비슷한 포맷으로 뒤를 따랐고 지금도 농촌 드라머 『해 돋는 언덕』(KBS), 어촌 드라머 『갯마을』(MBC)등이 추격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지금 TV는 가히 전원 드라머 시대를 맞고 있다.
현재 2백69화 『생명』을 집필중인 김씨는 전남 여수가 고향으로 경희대 국문과 1년이던68년 여원 여류신인 문학상에 『우계』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0년여 공백기를 거친 후인 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날개 달린 아가』로 입상했고 같은 해 MBC-TV창사 10주년기념 TV드라머 모집에 제3교실 『구석진 자리』로 당선되면서 TV드라머 작가로 변신했다.
74년 소설가 유금호씨(목포대교수)와 결혼, 딸 수지양(11)과 아들 병우군(9)등 네 가족.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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