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넬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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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05년 노일전쟁의 마지막 해전에서 막강한 발 틱 함대를 전멸시키고 개선한 일본함대 사령관「도오고·헤이하찌로」를 환영하는 식전이 크게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국의「넬슨」에게 비교하며 축사를 했다. 그러자「도오고」는『나를「넬슨」과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순신 장군에게는 못 미친다. 그것은 해군제독에 대한 하사관에 불과하다』고 답사했다.
얼마 후 실습 훈련 차 일본에 들른 미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일약「세계적 명장」이 된「도오고」원수를 방문했다. 존경의 표시로 한 젊은 사관후보생이 원수에게 물었다. 『가장 숭배하는 인물이 있다면…』그러자「도오고」는 서슴없이『16세기 조선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장군 일세. 그 분의 인품이나 국가에 대한 무 훈을 따를 제독은 아무도 없네』라고 대답했다.
그 이순신 장군과「넬스」제독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에는 한영 정상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왔다.
지난 8일 하오 다우닝가 10번지 수상 관저에서 있은 만찬석상에서「대처」수상은『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가장 유명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승리보다 2백여 년이나 앞서 일본함대를 섬멸했다』고 상기시켰다.
사실 충무공과「넬슨」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 사람은 대륙을 노리며 조선을 침략한 섬나라 지배자「도요또미·히데요시」의 야욕을 물거품처럼 스러지게 한 인물이며, 또 한 사람은 유럽의 통일을 꿈꾸며 섬나라 영국을 호시탐탐 노렸던 대륙의 지배자「나폴레옹」의 망상을 송두리째 쫓아 버린 인물이다.
일본의「군신」으로 추앙 받는「도오고」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전쟁에서의 전술, 전략 면에서는 물론 인품 자체에서도 충무공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우선「넬슨」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보자. 1805년 10월21일 프랑스의「빌레뢰브」제독이 거느린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27척의 영국함대로 격파한「넬슨」의 승리는 단 하루의 결전이었으며, 수적으로도 거의 비등한 전력이었다. 더구나 당시「빌레뢰브」는 결단성이 없는 지휘관으로「나폴레옹」에 의해 교체 설이 나돌고 있을 때였다. 전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충무공은 7년이란 기간 중 수십 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특히 울돌목(명량)해전에서는 1백33척의 일본함대를 단 12척의 배로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넬슨」의 경우 영국이 온 국력을 기울여 뒷받침한 일전이라면 충무공은 무고에서 풀려나 백의종군 끝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싸운 외로운 승리였다.
충무공의 이러한 승전보는 그의 탁월한 능력과 성품에서 온 것이라고 후세의 연구가들은 말한다.
자신의 체면, 이익, 명장보다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는 그야말로「멸사봉공」의 귀감 이었다. 현실을 보는 눈이 정확·신속했고, 또 확고한 목표 수행의 신념을 지닌 용장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한산 섬』같은 명 시조를 남겨 정서적으로도 성숙 미를 보인 지식인이었다.
해양대국의 재상이 충무공 얘기를 꺼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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