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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터미네이터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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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계인간 사이보그(Cybog)가 진짜 인간을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빠져 자살하는 '터미네이터 2'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이보그는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어 가면서도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워 주인공 소년에게 약속한다. "돌아올게"라고.

사이보그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57)가 약속을 지켰다. 12년 만에 '터미네이터 3'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근 세번째 터미네이터 역할보다 더 세인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의 '세번째 변신' 선언이다. 그는 22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두번째 영화배우 출신 주지사의 꿈이다.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산간마을 출신이다. 아버지는 나치당원 출신 경찰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어린 시절 그의 우상은 천하장사 헤라클레스 역할로 유명한 보디빌더 출신 영화배우 스티브 리브스였다. 그는 1968년 세계 보디빌딩의 금메달 격인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따고 바로 미국 할리우드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고, 82년 '코난'에서 우락부락한 근육질 원시인으로 연기해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정상급 스타 반열에 올려준 영화가 84년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1'이다. 비로소 몸을 가리고 연기로 승부했다.

86년 그는 케네디 가문의 딸(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과 결혼했다. 당시 그는 백만장자 부동산업자이기도 했다. 80년대에 영화배우와 사업가라는 두 가지 변신에 성공, 미국사회의 최상류층에 편입한 셈이다.

세번째 변신은 80년대 말부터 준비돼 왔다. 그는 공화당원으로 88년과 9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 시니어의 선거캠프에서 활약했다.

수년 전부터는 선거캠페인 전문가로 자문그룹을 만들어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다. 당초 목표는 200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계획이 앞당겨진 것은 주민소환(recall)으로 현 주지사가 곧 물러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여성편력 등 일부 시비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캘리포니아주는 그 자체로 경제규모 세계 5위다. 아직도 그곳엔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있는 듯하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한꺼번에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꿈 같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