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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단위 바꿔도 지하경제 양성화에 도움 안 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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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으로, 예를 들면 기존의 1000원을 새로운 화폐 1원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금융연 보고서 문제점 지적
“50~60년대처럼 예금 강제 못 해
바꾼 신권 장롱 속으로 숨을 것”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4일 ‘화폐단위변경을 통한 지하경제 양성화의 조건’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100원을 1환으로 변경했던 1953년 1차 화폐개혁은 교환된 신권 중 500환을 제외한 전액을 예금에 의무가입도록 했기 때문에 장롱 속 현금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도 잡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10환을 1원으로 바꾼 1962년의 2차 화폐개혁은 이런 조치 없이 구권을 전액 신권으로 바꿔줬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지금은 인플레이션은 커녕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인데다 강제예금이 가능한 시대도 아니다. 화폐개혁을 한다 해도 장롱 속 돈은 오히려 부피가 가벼워진 신권으로 교환된 뒤 다시 장롱 속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지난 6월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최 의원은 “화폐 단위가 너무 커져서 이제 곧 조(兆)를 넘어 경(京)이라는 숫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1달러에 1000(원)이 넘는 화폐 단위를 가진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폐단위 변경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도울 수 있으며 시기적으로도 저물가 때문에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은 지금이 적기”라고 강조했다. 화폐단위 변경은 참여정부 시절 박승 당시 한은 총재가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정부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현재로서는 화폐단위 변경시 혼란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만큼 전혀 시행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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