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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없다" 더위 식혀주는 공포영화 걸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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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을 오싹하게 만든 '장화, 홍련'으로 시작된 올 여름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거울 속으로''4인용 식탁'으로 이어진다. 혹시 아직도 공포 영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신작들을 만나기 전에 공포 영화의 명작들로 담력을 키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포 영화 걸작들을 보고 나면 올 여름이 시원해지지 않을까.

우선 출발은 가볍게 '스크림'(웨스 크레이븐.1999년)으로 하자. '스크림'은 '할로윈''13일의 금요일'등 연쇄 살인마가 등장해 10대들을 학살하는 '난도질 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작품이다.

한적한 교외에서 10대 소녀가 잔인하게 살해되고 몇년 전 어머니가 살해되는 참극을 겪은 소녀 시드니에게도 이상한 가면을 쓴 살인자가 덤벼든다는 내용. 짜임새가 튼실해 스릴러로서도 최상급이다.

또 다른 웨스 크레이븐의 작품 '나이트메어'(84년)는 지금 봐도 새로운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다. 아이들을 죽인 살인마 프레디는 분노한 부모들에 의해 보일러 안에서 타 죽는다. 하지만 프레디는 현실이 아니라 꿈 속으로 돌아온다. 꿈속에서 아이들을 죽이면 현실의 그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꿈에서 꿈으로 끊임없이 도망치면서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결코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인다.

살인마 영화도 무섭기는 하지만 초자연적인 공포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73년)는 공포 영화 최초로 1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공포 영화를 대중적인 장르로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을 엑소시즘이라 하고,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을 엑소시스트라고 부른다. 한없이 순수한 소녀의 육체가 악마에게 점령당하고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신부들이 찾아온다.

머리가 3백60도 돌아가고 오물을 뱉어내는 소녀의 모습을 보는 일은 무척 괴롭다. 진짜 경악스러운 장면은 오리지널에서 빠졌고(귀신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2000년에 상영된 감독판에서 부활했다.

'스파이더 맨'을 만든 샘 레이미의 데뷔작은 저예산으로 만든 '이블 데드'(81년)다. '이블 데드'는 보통의 난도질 영화처럼 청춘 남녀가 숲 속의 오두막에 캠핑을 가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오두막에서 이상한 책을 발견하고는 주문을 외워본다, 순전히 장난으로.

그 주문 때문에 악령이 깨어나고 친구들은 하나씩 괴물로 변해버린다. 당시 스물한살이었던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를 활기찬 공포물로 꾸며놨다. 쏜살같이 달리는 악령의 시점으로 숲 속을 누비는 광경은 이후 공포 영화들의 공식이 됐다

'링'(나카다 히데오.98년)은 악마와 살인마가 판치던 할리우드 공포 영화판을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원혼들의 저주로 덮어버렸다. 이원론적인 악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죄업 때문에 탄생한 원혼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감을 일깨워줬다.

일본판 '링'과 그것을 리메이크한 할리우드판 '링'을 함께 보면 동과 서에서 공포를 느끼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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