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왼쪽 두번째)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블로킹을 뚫고 강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효진 SNS]
여자 배구대표팀이 올림픽 8강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배구 여제’ 김연경(28·페네르바체)이 팀 최다인 19점을 올렸다. 김연경 못지않은 명품 조연도 있었다. 공격이면 공격, 블로킹이면 블로킹 못하는 게 없다. 여기에 서브까지 매서운 선수, 바로 양효진(27·1m90㎝·현대건설)이다.
예선 아르헨전 3-0 완승 이끌어
김연경 벤치서 쉴 때 추격 당하자
양효진 스파이크로 끊고 12득점
서브에이스 9개로 전체 공동 1위
양효진은 11일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A조 예선 3차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2세트 막판 김연경이 체력안배를 위해 잠시 코트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22-12로 앞서던 한국은 24-20까지 쫓겼다. 그러나 양효진이 차분하게 개인 시간차를 성공해 세트를 끝냈다.
양효진은 3세트 19-19에서도 2개 연속 스파이크를 성공한 뒤 23-22에서는 서브 득점을 올렸다. 그는 이날 김연경·김희진(17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2점을 올렸다. 3-0(25-18 25-20 25-23) 완승을 거둔 한국은 승점 6(2승1패)으로 브라질·러시아(이상 3승·승점9)에 이어 조 3위를 지켰다. 한국은 브라질(13일 오전 10시30분)과 카메룬(14일 오후 11시35분) 중 한 팀만 이기면 8강 진출을 확정한다.
이정철 여자 배구팀 감독은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경만 잘해서는 이길 수 없다. 다른 선수들이 분발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올림픽 배구는 이틀에 한 번씩 8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는 김연경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의 예선 2차전이 그랬다. 키 1m90㎝대의 러시아 블로커들은 김연경을 집중 마크했다. 세계 최강의 공격수인 김연경이라 해도 높고 촘촘한 3인 블로킹을 혼자 뚫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전에서 58.3%였던 공격성공률은 러시아전에선 36.7%까지 떨어졌다. 김연경의 부담을 가장 많이 덜어준 선수가 바로 양효진이다. 날개공격수가 아닌 센터임에도 양효진은 일본(21점)·러시아(17점)와의 경기에서 김연경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네덜란드 훈련 당시 룸메이트였던 김연경과 양효진(오른쪽).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효진 SNS]
양효진은 국내 여자부 최고 연봉(3억원)을 받는 선수다. 키가 큰 데다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뛰어나 7년 연속 블로킹 1위를 차지했다. 속공·이동공격·오픈 등 공격 옵션도 다양해 경기당 평균 10점 이상은 기본으로 올린다. 귀여운 외모 덕분에 ‘거요미(거인+귀요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양효진에게는 ‘국내용’ 또는 ‘아시아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장기인 중앙 오픈이 장신 선수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큰 서양 선수의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에선 몰라보게 달라진 양효진의 실력이 두드러진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장신 선수들의 공격을 툭툭 끊어내며 블로킹 전체 2위(10개)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양효진은 서브에이스 9개로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양효진이 쓰는 플로터(floater) 서브의 원리는 야구의 너클볼이나 축구의 무회전킥과 비슷하다. 손바닥으로 강하게 공을 때리면 공의 회전이 줄어드는 대신 상하좌우로 요동친다. 흔들림이 심한 그의 서브에 일본 간판선수 기무라 사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 중계진은 “김연경이 아니라 양효진을 막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2012년 런던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선 양효진의 목표는 분명하다. 자신이 빛나기보다 에이스 김연경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양효진은 “상대는 연경 언니를 막는데 집중한다. 나머지 선수들이 (김연경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