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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략 프로젝트 유탄은 어디로 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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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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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산업부 기자

정부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성장동력 확보’ 분야 5개와 ‘국민행복과 삶의 질 제고’ 분야 4개다. 미세먼지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고, 인공지능·증강현실이 갑자기 튀어나온 기술은 아니다. 다만 어느 날 돌풍처럼 국내 여론을 휘젓고 나니, 갑자기 9대 국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정책 입안자들의 순발력이 경탄스럽다.

문제는 신성장동력, 미래 먹거리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국가전략 프로젝트들이 이렇게 자주, 과거와 다르게 등장해도 괜찮으냐는 거다. 정부 주도의 신성장동력 찾기는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됐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8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했고,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 ‘22대 신성장동력’ 발표에 이어 이듬해 1월 이를 간추린 ‘17대 신성장동력’을 선정했다. 정권에 따라 슬로건은 달랐지만 ‘정부 주도의 신성장동력 육성’이라는 기본 방향은 똑같았다. 박근혜 정부도 정권 첫해를 빼고는 매년 성장동력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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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부 관계자에게 “국가 성장동력이 왜 이리 자주 바뀌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국가전략 수정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그럴듯한 해명이다.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의미가 뭐냐”고 다시 물었다. “아홉 가지에 국가전략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얘기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선순위의 의미가 뭐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예산 배정의 우선순위”라고 답했다.

연간 10조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이 있다고 가정하자. 지난해 우선순위 항목에 따라 19가지에 예산을 배정했다가 올해 다른 9가지로 우선순위를 바꾸면 제외된 분야의 예산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밖에 없다. 예산의 총액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과학자들이 절망하는 이유다. 올 3월 알파고의 충격 이후 정부가 인공지능(AI) 연구를 집중적으로 한다며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원을 지원하느라 지난 수년간 엑소브레인과 딥뷰 등 인공지능을 연구해 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예산이 80억원에서 60억원으로 깎였다. 국가전략 프로젝트가 바뀌면서 수년간 공들여왔던 연구들이 엑소브레인이나 딥뷰처럼 유탄을 맞게 된 것이다.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염려되는 일이 하나 있다. 혹여나 취재 과정에서 정책 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준 과학계 인사들에 대한 관료의 갑질이 있을까 해서다. 지난 정부에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를 자료로 도왔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간부가 ‘괘씸죄’로 직위해제 된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