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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지진에 날아간 태권도 꿈…13년 뒤 휠체어 궁사로 올림픽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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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3년 12월 이란 남동부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18세 소녀 자라 네마티는 척수를 다쳐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태권도 선수가 돼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은 네마티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란 네마티 18세 때 척수 다쳐
박면권 감독이 양궁 훈련 도와
1회전서 졌지만 관중 뜨거운 환호

그로부터 13년 뒤 네마티는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섰다. 더 이상 태권도를 하진 못하지만 휠체어에 탄 채 활을 쏘는 양궁 선수로 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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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선수였던 네마티는 사고를 당한 뒤 양궁으로 전향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활시위를 당기는 네마티. [AP=뉴시스]

네마티는 10일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양궁 64강전에서 인나 스테파노바(러시아)에게 2-6으로 졌다. 올림픽 첫 경기에서 탈락한 네마티를 향해 관중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이 경기가 네마티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란에는 세계 유일의 태권도 리그가 있을 정도로 태권도의 인기가 높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낸 태권도 강국이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가 전부였던 네마티는 사고를 당한 뒤 모든 걸 포기하려 했다.

좌절했던 그를 양궁이 일으켰다. 상반신만 건강하면 활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네마티의 강한 의지와 집중력은 양궁과 잘 어울렸다. 양궁 입문 2년 만에 2006년 이란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2012 런던 패럴림픽 리커브 W1(휠체어 경추 손상)/W2(휠체어 척수 손상) 금메달을 따냈다. 이란 여자 선수로는 최초의 패럴림픽 금메달이었다.

장애인 양궁 최강자가 된 네마티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양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기 규정이 똑같다. 다만 일반 선수에 비해 휠체어에 앉아 활을 쏘다 보면 균형 감각이 떨어진다. 네마티는 독한 훈련으로 핸디캡을 극복했다. 부탄·콜롬비아·방글라데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한국의 박면권(48) 감독이 그의 휠체어를 밀며 지도했다.

네마티는 지난해 11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란의 단체전 8강 진출을 이끌며 리우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이란은 네마티에게 선수단 기수를 맡겼다. 120년 올림픽 역사상 장애인 선수가 올림픽 기수로 나선 건 그가 처음이다. 비록 올림픽 1승이라는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네마티는 미소를 지으며 사선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아쉬움이 컸는지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네마티는 “내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걸 보고 많은 사람이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7일 개막하는 패럴림픽에서 2연패에 도전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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